터키의 이스탄불
자일린은 참 열심히 산다.
직장에 다니면서 여행자들에게 방을 빌려준다.
그녀는 두 개의 방과 하나의 거실과 좁은 부엌을 가지고 있다. 가능하면 두 개의 방은 여행자에게 주고 그녀는 거실의 소파에서 잔다. 방과 거실, 욕실 모두 깨끗하다.
자일린은 출근하기 전 우리에게 뭔가 정보를 주려고 노력했다. 제이는 겸손한 자세로 자일린의 이야기를 들었다. 무릎을 꿇고 자일린을 바라보았는데 그것은 마치 신을 마주한 자가 무엇이든 분부만 하세요,라고 자세였다.
처음의 계획은 샤프란볼루에 가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는 흑해를 따라 가다가 가능하면 조지아까지 가는 것이었다. 우리가 진로를 변경하게 된 것은 그 택시기사 때문이었다.
여행을 계속하되 우리는 터키를 떠나기로 했다.
지도에서 우리의 시선이 향한 곳은 이스탄불의 동쪽이 아니라 서쪽이었다.
거기 불가리아가 보였다. 제법 가까운 곳에 플로브디프라는 도시가 있었다. 우선 거기까지 가보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플로브디프’의 여행자들은 그곳을 ‘풀러브디프(full love deep)’이라고 불렀다.
사랑이 깊어지는 곳이란 뜻이었다.
도시의 이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자일린은 우리에게 그곳으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할 수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근처였다. 예매만 그곳에서 하고 국경을 넘는 버스를 타는 곳은 다른 곳이었다. 그 터미널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표를 예매한 곳에서 세르비스라는 서비스 버스로 그곳까지 데려다 준다고 했다. 주의할 점은 세르비스가 무료라는 것이다. 가끔 직원들이 외국인들을 상대로 요금을 내라고 하기도 한다고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후 자일린이 말했다.
- 저는 오늘 집에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집을 우리에게 맡긴다고, 나는 조금 놀라서 그런 뜻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이잖아요. 전 오늘 밤 파티에 가요.
자일린이 출근을 하고 나는 부엌에서 이름 모를 차를 타 왔다.
그것을 마시면서 잠시 우리는 우리의 여행을 계속하도록 용기를 준 여행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었다.
이야기 중에는 우리가 이스탄불에 도착했을 때와 비슷한 시간에 독일에 도착한 두 여행자에 대한 것이 있었다.
그녀들이 겪은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두 여자는 뮌헨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해둔 호텔에 도착해서 방으로 올라갔다. 짐을 풀고 시내로 나가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누군가 방에 침입해서 카메라와 현금과 여권을 가지고 갔다. 리셉션에 말했지만 그들로부터 도둑이 들었는지 증명해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일단 방을 바꾸어 달라고 했다. 호텔은 거절했다. 도둑이 다녀간 곳에서 잠을 잘 수 없어 불안에 떨고 있다. 그녀들은 당장 돌아갈 수 있는 비행기표를 찾고 있다. 우리의 선택은 현명한 것인가요? 우리에게 묻고 있었다.
- 제이, 사람이 남의 불행으로 자신의 불행을 상쇄한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
- 그래서는 안 되는데, 그렇게 되네.
- 난 어느 날 어른들의 말씀이 이상하다고 느꼈어.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아래를 보고 살아라. 이 말씀은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보고 위안을 삼아라 뭐, 이런 말 아니겠어?
제이가 내 질문을 고쳐 되물었다.
- 사람들이 왜 모여서 하소연을 즐기는지 알아?
- 왜?
- 나의 고통이 나만의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제이는 카페에서 본 아주머니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세 명의 아주머니가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아들이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애가 탄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주머니가 말을 받았다. 그래도 좀 낫네. 난 아들이 공부를 안 할 뿐만 아니라 남편이 맨날 술만 먹어서 짜증이 나. 그 이야기를 나머지 한 아주머니가 받았다. 그래도 나보단 낫네. 난 아들이 공부를 안 할 뿐만 아니라 남편이 술 먹고 들어오면서 바람까지 핀다오.
- 처음 하소연을 한 아주머니의 슬픔이 조금 가벼워졌겠지?
제이가 말했다.
- 아주머니의 슬픔은 슬픔이 사라져서 가벼워진 건 아니네.
알면서도 내가 물었다.
- 그렇지. 타인의 더 큰 슬픔을 확인한 다음 가벼워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