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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전 사기꾼

불가리아의 플로브디프

by 카렌

아침 산책을 나갔다.


한 도시에서 2박 이상 할 것, 새벽 산책을 나갈 것. 이것이 우리가 잡은 여행의 컨셉이었다.


이스탄불보다 산책하기 좋은 곳이라고 제이가 말했다.


길도 넓고 차도 없었다. 일찍부터 일어난 아주머니들이 거리를 쓸고 있었다. 쓰레기도 없는 거리를 쓸며 낯선 우리를 가끔씩 훔쳐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보내주었다.


거리를 빠져나와 중앙우체국을 향했을 때 광장 위로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너무나 싱싱한 느낌의 파란이었다.

카지노가 있는 곳까지 걸었다. 세련된 건물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곳이 명성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구시가지 때문이었다. 모던한 분위기는 현재 이곳 사람들의 생활을 위하여, 구시가지는 나 같은 사람의 눈과 마음을 위한 것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이곳은 한때 불가리아의 수도였다.


보통 소피아를 통해서 들어온 관광객들이 반나절 코스로 이곳을 방문한다고 했다. 아침 일찍 소피아를 출발해 저녁에 소피아로 되돌아가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플로브디프에서 며칠 보낸 후 소피아로 거슬러 올라갈 예정이었다.


이 카드가 생기고 직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걸으면서 내가 말했다.


환전사기꾼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내 카드는 동유럽처럼 화폐 단위가 다 다른 국가를 여행할 때 더할 나위없이 좋은 것이었다. 돈을 인출한 다음 스마트폰으로 정확히 한국 돈으로 얼마나 인출되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돈을 뽑을 때마다 수수료를 내지 않고 얼마를 찾든 그 돈에서 1%만 수수료로 지급했다.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큰 돈을 뽑을 필요가 없었다.



환전 사기꾼들의 수법은 대충 이랬다.


그들은 환전을 필요로 하는 여행자들을 거리에서 찾은 다음 좋은 조건으로 환전을 해주겠다며 친절하게 접근한다. 그리고는 어느 나라의 망명 정부 지폐 한 다발을 여행자에게 안겨준다. 여행자는 돈을 쓰기 위해 가게에 들어갔다가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 그 나라에 들어온 여행자라면 보통 그 나라 돈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른다. 사기꾼들은 그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어떤 환전소는 환전수수료가 포함된 가격으로 거래를 해 놓고도 따로 환전수수료를 요구한다. 어떤 사기꾼은 100리라짜리 열 장을 건네준다. 그것을 지갑에 넣고 돈을 쓰기 위해 다시 꺼내었을 때 여행자는 아홉 장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둘의 경우 모두 증거가 없기에 찾아가 따질 수가 없다. 하


내 카드는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atm기에서 인출할 수 있었다.

환전사기꾼들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앞으로 사기꾼들이 이길 것 같지는 않았다. 대기업을 이길 수 있는 영세 상인들은 없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밉지만 직장을 잃는다는 사실이 조금 걱정스러웠다.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불행이 아니겠는가.


제이는 이런 내 태도를 단호하게 고쳐주었다.

- 대기업은 1%의 수수료만 받지만 그들은 말도 안 되는 돈을 강탈해가잖아. 망해도 싸.

웬만하면 대기업 편을 들지 않는 제이에게서 이런 소리가 나오니 사기꾼들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정확히 감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