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행자들

불가리아의 플로브디프

by 카렌

새벽과 아침이 정확히 나누어지는 경계가 있다.


아, 이제 밝았구나 하는 그 지점. 더 이상 새벽이라 부를 수 없는 최초의 그 아침. 글을 쓰다가 틈틈이 나는 커튼을 걷어 유리창 밖을 보았다. 그런 지점이 순간적으로 지나가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더 밝아지기 전에 산책을 나갔다.


이른 시간 카페에 몇몇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우리도 높은 의자에 마주 보고 앉아 거리를 구경했다.


지금 막 이 도시에 도착한 것으로 보이는 여행자 들이 보였다.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들은 헤매는 사람처럼 조금 초조해 보였다. 따뜻한 곳으로 잠시 들어오면 나을 텐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나가서 길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이 찾으려고 하는 것은 구시가지 아니면 신시가지에 있는 호스텔쯤일 텐데 어디가 어딘지 대강 알만큼 이 곳의 지리에 조금 자신이 있었다.

그러자 제이는 이렇게 말했다.


- 친절하게 먼저 접근해오는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 건 알지?


노른자가 익지 않은 달걀이 얹힌 토스트를 주문했다.



드디어 달걀 프라이를 먹게 되었다며 나는 속으로 좋아했다. 식빵 위에 시금치가 놓여 있고 그 위에 치즈가, 그 위에 계란 프라이가 얹힌 구조였다. 시금치를 뜨거운 물에 데쳐 이렇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떤 곳에서는 생시금치를 샐러드의 재료로 사용했다. 시금치에 대한 이런 발견이 유적지에 대한 감회보다 내 생활에 주는 변화가 훨씬 컸다.


우리는 어른들의 여행 방법을 지적했다.


여행을 떠난다는 내게 이렇게 묻는 어른들이 있었다.

- 거긴 왜 가느냐, 배울 게 뭐 있다고?


어떤 어른들에게는 배울 만한 것이 있는 곳으로의 여행이 여행이었다. 그러니까 선진국 시찰 같은 것 말이다. 그분들은 우리보다 잘 살지 못하는 나라로의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쓸데없이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근대에 세계 여행을 경험했던 한 인물이 떠올랐다.


유길준이었다. 고종 황제가 뭘 좀 배워 오라고 일본에 신사유람단을 보낼 때 그는 따라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게이오 대학에서 유학을 했다. 보빙사라고 불리는 사절단이 미국에 갈 때도 그는 따라갔다. 역시 돌아오지 않고 유학을 했다. 그때 그의 유학비용을 댄 것은 대한제국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최초의 국비유학생인 셈이다. 나중에 고종 황제가 유학 비용을 끊자 그는 곧바로 우리나라로 돌아오지 않고 유럽과 동남아와 일본을 두루 거쳐 선진국의 제도와 법규를 공부해왔다. 그렇게 하여 남긴 책이 서유견문이다.


- 그 사람이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뭔지 알아?

- 뭔데?

- 단발.

- 단발? 머리 자르는 거?

- 응.

- 이 문제로 최익현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어.

- 내 목은 자를 수 있을지언정 내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

- 맞아 그 말 한 사람. 우리나라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머리도 그가 직접 잘랐지. 그 시대의 논쟁을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게 보여. 머리카락 그게 뭐라고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나 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

- 세계 여행 끝에 배운 것이 머리카락은 잘라야 한다는 거구나.

제이가 농담을 했다.


- 맞아, 세계 여행의 결과 치고는 너무 작은 거지.


나도 농담을 했다.


- 머리카락이 얼마나 중요한데.


우리는 학교 다닐 때 복장을 단속하던 선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아, 근데 우리 몸은 불가리아에 와 있는데 머리가 너무 한국적인 거 아냐?

우리는 웃었다.


제이가 우리의 대화를 정리했다.


- 여행은 공부하러 가는 아니야, 여행을 하다 보면 어떤 방식으로든 공부가 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