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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불가리아의 플로브디프

by 카렌

‘헤밍웨이’라는 이름을 가진 레스토랑이 있었다.


숙소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지도에서 그 식당을 발견했다. 제법 가까운 곳이었다.

플로브디프와 헤밍웨이?


그들이 무슨 관계가 있었나 싶어 머릿속을 헤집었다. 내가 아는 바로 그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헤밍웨이가 아프리카에 사냥 여행을 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해까지 쿠바의 아바나에서 머물렀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불가리아의 플로브디프와 미국인 헤밍웨이라.


- 혹시 아는 거 있어?

- 없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곳은 헤밍웨이의 작품과 삶을 컨셉으로 인테리어를 한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었다. 쿠바 시절일 것 같은 헤밍웨이의 사진과 작품들이 벽에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았을 때 놓아 준 종이 위에는 쿠바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춤을 추고 있었다. 살사 음악이 흐르는 것 같았다. 헤밍웨이를 사랑한다면 쿠바에 대한 사랑을 숨길 수가 없다. 그에게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노인과 바다’가 탄생된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나는 헤밍웨이의 흉내를 내 본 적이 있었다.


쿠바에 있을 때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던 술이 모히또다. 그는 아바나의 암보스문도스 호텔에 머물며 낮에는 글을 쓰고 저녁에는 항구 근처 라보데키타라는 주점에 들러 아바나 럼주에 민트 잎과 레몬즙, 라임을 섞어 만든 모히또를 주문했다.

하노이에 혼자 남게 되었을 때 그 술을 주문해 마셨다. 하노이의 가장 멋있는 거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카페의 테라스에서.


- 그때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

- 몰라.

- 널 기다리고 있었지.

제이는 잠시 친구를 만나러 가고 없었다.


내가 여러 잔의 모히또를 시켰지만 종업원이 다가와 내게 말했다.

- 자리 좀 옮겨 주실 수 없을까요?


죄송하다는 말은 없었다.


내가 왜,라고 묻자 그는 뒤에 서 있는 커플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내가 앉아 있는 아름다운 장소를 커플에게 양보하라는 거였다. 내가 양보해야 하는 이유는 혼자이기 때문이었다. 혼자서는 좋은 풍경을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없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참 잔인하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자리를 양보했다.

내게 모히또를 소개한 사람은 제이였다.


하노이의 백패커스 호스텔 바에서 무얼 마셔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제이가 이렇게 말했다.

- 모히또 어때, 헤밍웨이가 사랑한 술이었는데?


그때부터 베트남을 떠나기까지 뭔가를 마셔야 한다면 모히또를 주문했다. 나름대로의 작은 허세였다.

쿠바 혁명이 성공하자 헤밍웨이는 아바나에서 쫓겨났다.


미국인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쿠바는 헤밍웨이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헤밍웨이가 머물렀던 호텔과 주점은 명소가 되어 찾아가면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헤밍웨이가 모히또만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럼주에 소다수를 섞고 얇은 얼음을 깐 다이끼리라는 술도 사랑했다. 이 술을 마시기 위해서 그는 시내 중심의 플로리디타를 이용했다. 두 술집의 대박 소식은 멀리 한국에까지 들려왔다. 찾아가면 앉을 자리를 찾기 힘들고 서서라도 기꺼이 사람들은 주문을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플로브디프와 헤밍웨이는 역사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같았다.


헤밍웨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 이름을 따 고급 레스토랑을 만든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누군가를 기억하려는 이러한 방식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

헤밍웨이는 네 번이나 결혼을 했고 그때마다 대작을 남겼다.


그리고 엽총으로 자살을 했다. 에너지가 넘쳐 보이고 강직해 보이는 사람의 선택이라고는 믿기 힘들다. 나는 그의 아버지도 권총 자살을 했다는 사실로 그의 죽음을 조금 이해해보려고 했다.


제이는 메뉴판을 보는 것만으로 즐거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고급 레스토랑답게 키릴 문자 아래 영어가 적혀 있었다. 그 영어를 보며 제이는 식단을 짰다.

제이는 돼지고기로 만든 무언가를 나는 타이거 새우로 만든 무언가를 시켰고, 생선 수프를 시켰고 오렌지 주스와 티를 시켰다. 먼저 나온 것은 생선 수프였다. 매운탕 같은 거였는데 맵거나 짜지 않고 입에 잘 맞았다. 나머지 음식에 대해서도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과하게 좋다고 해도 나무랄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고급 레스토랑이지만 한국에 비해 저렴했다. 그게 좋아서라도 이 도시를 다시 찾지 않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