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의 플로브디프
플로브디프의 마지막 밤을 나는 bar&grill에서 보냈다.
나중에 제이는 그곳이 불가리아에서 유명한 프랜차이즈라고 내게 가르쳐주었다.
나는 바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리스본행 야간 열차’를 읽었다. 와인은 장미로 만든 것이었다. 굳이 맛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장미는 보는 것이지 먹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야기는 조금 더 ‘카네이션 혁명’쪽으로 깊어가고 있었다.
카네이션 혁명은 1974년 포르투갈에서 일어난 무혈 혁명이다. 혁명의 소식이 알려지자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군인들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했다고 한다. 소설은 그레고리우스라는 이름을 가진 한 남자가 우연히 얻게 된 책의 저자를 찾아 기차를 타고 스위스 베른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가서 겪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카네이션 혁명에 대해 알아보던 중 살라자르, 를 만났다.
그는 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나기 전 36년간 포르투갈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총리다. 내가 없으면 포르투갈은 망한다고 생각했던 인물로 비밀 경찰을 통해 반대자들을 악랄하게 제거했다고 한다.
그의 최후가 재밌다.
그는 휴가를 즐기러 갔다가 해먹에서 잠을 자던 중 떨어져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국정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국민들은 한 달 간이나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더 이상 숨길 수 없자 정부는 살라자르의 상태를 국민에게 알렸다. 곧 국정을 책임질 새로운 총리가 임명되었지만 측근들은 살라자르에게만은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반신불수가 되었지만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온 그에게 측근들은 가짜 신문을 보여주고 가짜 보고서를 만들어 세상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그는 정말 내가 아니면 이 나라는 안 된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죽는 순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가짜 문서에 힘을 주어 결재했다. 누군가는 그의 행동을 ‘강한 정신력’이라고 치켜세웠다.
오늘은 좀 더 일찍 산책을 다녀왔다.
그래서 문을 연 곳이 없었다. 카지노 근처를 좀 더 찾아 보았지만 문을 연 곳은 없었다. 버스 터미널로 내려와서 1.5레바(약 1000원)를 주고 피자 두 조각을 샀다. 이걸로 아침을 때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트에서 요플레 두 개를 샀고 오이 샐러드를 샀다.
- 독재자들의 최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쁘지 않아.
가정부와 주치의만 지켜보는 가운데 살라자르가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말하자 제이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흔히 독재자의 결말을 거론하면서 나쁘게 살았기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식의 권선징악적인 결말을 내는 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언젠가 ‘세계 독재자들의 비참한 최후’라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스탈린은 독살된 것으로 추정되고, 후세인은 교수형에 처해졌고, 히틀러는 자살, 차우세스쿠는 총살, 카다피도 총살을 당했다면서 독재자의 최후는 비참하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몇 살에 죽었는지를 잘 생각해보면 그런 식의 논리가 맞는 것인지 의심스러워진다. 히틀러와 후세인을 제외하면 다들 70이 넘어 죽었고 후세인은 69세까지, 히틀러는 오십 대 후반까지 살았다. 그 나이 때까지 수십 년간 자기 마음대로 살아보고 그렇게 죽었다면 비참한 최후라고만 말할 수 없지 않을까.
내 이야기를 듣고 제이가 말했다.
- 김일성의 삶을 어떻게 권선징악적 결말로 이야기할 수 있겠어. 천수를 누리다 갔는데. 살라자르는 몇 살에 죽은 거야?
- 음, 한 여든 둘?
- 그 봐, 그도 독재자지만 천수를 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