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의 소피아
플로브디프의 구시가지 골목을 걸어 다닐 때 집집마다 붙어 있는 종이를 보았다.
사람의 그림이나 사진이 있고 알 수 없는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그 종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무려 2000년이나 되었다는 돌길을 걸으며 우리는 의논하곤 했다.
그때 내린 결론 중의 하나가 문패였다.
문패가 아니라면 그렇게 집집마다 붙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떤 풀로 잘 붙여 놓았는지 끝부분이 바람에 펄럭일 때도 있었지만 종이는 찢어지거나 달아나지는 않았다. 오랜 세월 붙어 있었던 것처럼 빛바랜 모습도 많았다. 그래서 구시가지는 훨씬 더 오래되어 보였다.
- 그러니까 사진이나 그림은 집주인의 모습이 아닐까?
우리는 거기까지 생각했다.
그 생각은 조금만 맞았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소피아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주머니는 그게 부고장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사진이나 그림은 죽은 이의 모습이었다. 종이의 가운데 위쪽에 왜 붉은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정교회를 믿는다는 뜻이었다.
- 그렇게 죽은 사람이 많아요?
집집마다 붙어 있던 것을 떠올리며 내가 한 말이다.
- 장례를 다 끝낸 다음에도 오랫동안 부고장을 떼지 않는 집이 많아요.
- 왜 그런 거죠?
- 부고장이 붙어 있는 집 중에 빈집이 많아서죠. 부모와 자식이 따로 사는데 장례식을 치르고 나면 자식이 부모 집 관리를 소홀히 해요. 빈집 중에는 고독사를 한 경우도 많아서 그럴 땐 누가 관리해 주기가 그렇죠. 우리 집 위층이 바로 그런 경우였죠.
밥을 먹을 때 아주머니는 자리를 피했다.
내가 함께 저녁을 하시는 게 어떠냐고 여쭈었는데도 손님과 겸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치와 연근조림, 계란찜과 오징어 채, 콩비지, 부침을 반찬으로 한 저녁은 훌륭했다. 이국에서도 이런 밥상이 차려질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우리는 내일 저녁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할 생각이었다. 나는 대통령 궁과 같은 건물에 붙어 있는 멋진 레스토랑을 보면서 제이에게 내일 저녁은 저곳에서 나와 함께 해줄 것을 부탁했다. 제이는 기꺼이 수락했다. 하지만 소피아 아주머니의 저녁을 먹으면서 제이는 그 계획을 취소했다. 그 어떤 레스토랑보다 소피아 아주머니의 음식이 더 맛있을 거라는 게 이유였다. 나 역시 동의했기에 우리는 쉽게 계획을 바꿀 수 있었다.
저녁을 마친 후 일부러 아주머니에게 차를 한 잔 할 수 없냐고 청해서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에 대해 물어보고 이야깃거리가 있으면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1989년 이후 동유럽에는 민주화의 바람이 일었고 1990년부터 불가리아는 사회주의 경제를 버리고 시장 경제를 받아들였다. 그 이후의 소소한 변화들에 대해 우리는 들을 수 있었다.
- 요즘에는 부모와 자식 간 금전적인 문제로 다툼이 많아졌어요. 재산을 자식들에게 미리 물려주었다가 버려지는 노인도 많고, 미리 재산을 주지 않는다고 깽판을 치는 자식들도 많아졌죠. 그래서 뭘 좀 아는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집 열쇠를 안 줘요.
- 왜요?
- 왜긴요. 나 없는 사이에 도둑질해 갈까봐 그러는 거지.
우리가 걸어온 길과 불가리아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촌향도도 그 중의 하나였다. 내가 불가리스 광고에서 보았던 불가리아의 농촌 풍경은 이제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젊은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떠나버렸기에 노인들만 남은 농촌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