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의 소피아
소피아 거리를 이리저리 쏘다니고 돌아올 때가 좋았다.
소피아 아주머니가 차려준 저녁 때문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9번을 기다리는데 눈이 내렸다. 캄캄한 밤에 하얀 빛이 환했다. 꽃집이 흔한 걸로 봐서 꽃을 사 가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었다.
거리에서 여자들은 흔하게 담배를 피웠다. 그런 모습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유로워 보여 좋았다. 골목골목엔 술집이 있었지만 술에 취해 주사를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한때 공산주의였던 나라의 특징 중 하나라고 했다. 얼마나 갈지 알 수는 없었다.
거리엔 낙서가 많았다. 예술로 인정해주기에는 너무 흔했다. 내겐 그런 것들이 슬럼의 냄새로 여겨졌다. 이런 생각에 대해 소피아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학교에서도 낙서를 허락해주는 편이에요. 반정부 관련 낙서도 많은데 언론이 열려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불가리아 정치사 중에 내가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1990년 자유 선거가 있었다. 이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공산체제를 무너뜨리는데 기여한 민주세력연합이 아니라 사회당으로 이름을 바꾼 구 공산당이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는 우리나라 어느 진보 정치인의 말을 여기서도 적용할 수 있을까? 구체제를 무너뜨릴 정도의 분위기가 과반수를 뛰어넘는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했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거실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며 다른 여행자들이 남기고 간 책을 읽었다.
그 와중에 나는 제이에게 내 의문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 목소리 큰 사람 때문에 혁명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변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많았던 거지.
사람은 살던 습관대로 굳어지게 마련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이라는 말을 듣는 것도 살던 대로 사는 게 편해서 그런 것 아닐까? 그러니까 공산주의 국가에서 살던 사람들은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서 살기가 귀찮고 두려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