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라 수도원

불가리아의 릴라 수도원

by 카렌

깊은 산 중에 우리 둘이 와 있다.


밖에는 눈이 실처럼 내린다. 제이는 ‘미 비포 유’를, 나는 ‘리스본행 야간 열차’를 읽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각자의 천재성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천재성은 별개 아닙니다. 우리의 개성만큼 다양하지요.


이런 문장과


네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 많은 경험을 해봐야하지 않을까.


이런 문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실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를 구구절절 실감하게 하는 일이 뭔지 알아? 신나는 가족 소풍을 한 번 계획해보면 알게 될 걸.


이런 문장에 대해서도.


이런 것에 대화를 나누다보면 외로움은 어딘가로 가 버리고 없다.


- 스무 살이 되면 서유럽 애들은 누구나 배낭여행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애들도 많은 가봐.


제이는 태어난 곳을 한 번도 벗어나보지 못한 영국 여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 방에 있을 유고를 떠올렸다.


유고는 무얼 하고 있을까. 혼자서 포도주를 마시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밤도 그의 인생에 멋진 밤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술을 좀 좋아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건한 수도원 방에 앉아 조용히 포도주를 마시며 취한 기분으로 잠들고 싶었다.


우리는 릴라수도원으로 오는 미니버스 안에서 만났다.


겨울이어서인지 종점까지 온 사람은 넷밖에 없었다. 나와 제이, 유고와 레바논 남자.


수도원에 도착하기 30분 전 미니버스는 어떤 마을에서 삼십 분 정도 쉬었다. 낯설고 쓸쓸해 보이는 마을에서 나는 무언가를 좀 하고 싶었다. 아무 말 없이 앞을 향해 걸어가자 나머지 세 사람이 따라 왔다. 가까운 거리에 다리가 있었고 그 다리 위에서 세차게 흘러가는 냇물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먼저 말을 걸어 온 사람이 유고였다.



- 커피 마시러 가지 않을래?


그는 프랑스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몹시 춥다는 액션을 취했다. 3개월째 여행 중이었고 플로브디프에서 샀다는 겨울옷은 주머니가 터지고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다.

그를 따라 우리 셋은 걸었다.


그가 도착한 곳은 낡은 구멍가게였다. 문을 열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앉아 조용히 무언가를 마시고 있었다. 잎사귀를 모두 잃어버린 나무처럼 사람들은 허름하고 앙상해보였다. 외국인들의 방문에 호기심을 보였다. 우리가 주문을 하면 적극적으로 의논하고 뭔가를 이해한 사람들은 도와주려고 끼어들었다.


유고는 플라스틱 병에 든 포도주를 사고 소시지를 주문했다. 갱지로 소시지를 둥글게 말아 포장을 하는 주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저녁은 준비해왔어?


유고가 물었다.


- 물론.


나는 요플레와 토마토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짐을 보았을 때 젊은 여행자의 배낭이 큰 이유에 대한 한 여행자의 기록이 떠올랐다.


젊었을 때는 갖고 싶은 것이 많았어요. 낯선 나라의 반짝이는 것들을 보면 갖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로 열심히 일한 돈을 거기에 쏟아 부었지요. 젊었을 때는 그걸 배낭에 가득 넣고 다녀도 하나도 무겁지가 않았어요. 근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돈이 생겼는데도 갖고 싶은 것이 없네요. 그걸 들 힘도 없구요.(네이버 블로그 호텔 마릴린에서 인용)


유고는 무척이나 큰 가방을 등에 메고 또 하나의 가방을 앞으로 메고 양손에 또 작은 가방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가방은 이리저리 치여서 낡았지만 그 속은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할 것 같았다. 그에 비하면 내 배낭은 단촐했다. 심지어 제이의 배낭보다도 나는 가벼웠다.

오후 세 시 버스로 레바논 사람은 소피아로 돌아가고 우리는 실처럼 떨어지는 눈을 보면서 수도원 방을 내 줄 사람을 기다렸다. 각자의 방을 배정 받은 다음 유고에게 핫팩을 하나 건넸다. 그는 그것을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배에 붙이는 시늉을 한 다음 외롭지 않을 거야, 하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