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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라 수도원의 종소리

불가리아의 릴라 수도원

by 카렌

짐을 풀고 수도원 여기저기를 산책하고 컴컴한 릴라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물도 마셔보았다.


머물기로 한 건 잘한 일이었다. 3시 차를 타고 돌아갔다면 다른 여행자에게는 굳이 갈 필요가 없는 곳이라고 조언할 것 같았다. 3시간 차를 타고 가서 1시간 반을 둘러본 다음 3시 차를 타고 돌아와야 하는 피곤한 곳이라고. 어떻게 보면 볼 것은 없다. 그냥 수도원일 뿐이다. 그러나 사물을 오래 쳐다본 자들만이 사물들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꺼내듯 수도원 속에 오래 머물러 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이 여기 있었다.


오후 다섯 시 무렵에는 우연히 종 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검은 옷을 입은 수사는 하얀 줄이 달린 여섯 개의 종을 악기 다루듯이 연주하고 있었다. 제이와 나는 경건한 자세로 그 종소리를 경청했다. 네 명의 백인은 눈 옆에서 나뒹구는 개와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때도 종은 그렇게 울렸을 것이다. 그때 종치는 사람의 마음은 쓸쓸했을까. 일을 마친 수도자는 종탑에서 내려와 검은 옷으로 온 몸을 가린 채 하얀 눈 길을 걸어갔다. 곧 세상은 어두워졌다.


그때 고독한 한 신부님의 기도가 떠올랐다.



주여, 오늘 밤 나는 혼자입니다.


성당 안의 소음도 차츰 사라지고 모두들 제각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도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나 혼자서.

산책에서 돌아오는 사람들과 마주쳤습니다. 많은 사람을 내뱉듯 쏟아놓는 극장 앞을 지나서 일요일의 기쁨을 좀 더 오래 즐기려고 다방 앞에서 노닥거리고 있는 한가한 이들을 피해 가다가 가는 길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과 마주쳤습니다. 주여,


그 아이들은 절대 내 아이가 될 수 없는 남의 아이들입니다.


주여, 나를 보십시오. 나는 혼자입니다. 침묵이 나를 숨 막히게 하고 고독이 나를 괴롭힙니다.


주여, 나는 서른다섯, 다른 사람과 다름없이 건장한 몸,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힘찬 팔과 누군가를 사랑하고픈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바쳐왔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당신은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다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주여, 이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 몸을 사람에게 주지 않고 주님께만 드린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하면서도 누구의 사랑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젊은 여성과 악수를 하면서도


그 손을 오래 잡을 수 없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성에 대한 사랑이 싹트면서도 이를 주님께 드린다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남을 위해서 모든 것이 된다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고 또 그들 틈에 끼어 있으면서도 그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받을 생각을 않고 언제나 주기만 한다는 것, 내 이익은 찾지 않고 남의 이익만을 찾는다는 것, 남의 죄를 듣고 혼자 괴로워하고 이를 견디어 내는 것, 비밀이 있으면서도 이를 어떻게든 터놓지 못한다는 것, 언제나 남은 이끌고 가면서도 자신은 한순간도 이끌리지 못 한다는 것, 약한 사람을 붙들어주면서도 자신은


어느 강한 사람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이 모두 다 어려운 것뿐입니다.


혼자라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 있으면서도 혼자라는 것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고통과 죽음과 죄 앞에 혼자 서 있다는 것, 주여 정말 어렵습니다.*

* 『삶의 모든 것』, 미셸콰스트, 최익철 옮김, 성바오로 출판사 197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