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의 스코페에서 오흐리드
스코페에서 출발한 오흐리드 행 버스는 세 시간을 달렸다.
길 양쪽으로 눈이 쌓여서 버스 안은 눈부셨다. 눈부셨지만 아무도 커튼을 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잠이 든 사람들은 악몽을 모를 것 같았다. 산등성이에 있는 휴게소를 들렀을 때 나는 요플레를 하나 사먹었다. 하늘이 파랬는데 그 파란 하늘과 버스와 어떤 한 사람은 내게 멋진 사진 한 장을 남겨 주었다.
두 개의 정류장을 더 지나는 동안 뒤에 앉은 커플은 쪽쪽 서로를 빨아댔다.
사랑하는 연인끼리 충분히 그럴 수 있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자니 오래된 사이는 아니었다. 서로의 전화번호나 페이스북 주소 같은 것을 묻는 것으로 보아 어젯밤 어느 호스텔에서 만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은 남자의 턱을 올려다보곤 했다. 틀림없는 사랑의 눈빛이었지만 그들은 언어가 달랐다. 남자는 유창한 영어를 사용했고 여자는 그러지 못했다. 여자의 웃음소리가 자주 커졌던 것은 영어에 맞추어주느라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제이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끼리 어떻게 저렇게 빨리 친해질 수 있지, 하고 물었다.
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다.
버스에는 한국인이 한 명 더 타고 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소피아에서 스코페로 넘어가는 버스 안이었다. 처음 만난 한국 사람이라 우리는 반가웠는데 그녀는 조금 어색해했다. 여자의 옆에는 백인 남자가 있었다. 나중에 그 남자가 마케도니아인이라 말해주었다. 그 남자와 나란히 앉은 여자는 자주 크게 웃었다. 정확하게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때 친밀감을 주기 위한 그런 웃음이었다. 버스터미널에 내려 정해둔 곳이 있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남자를 따라 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버스에서 만났을 때 그녀는 혼자였다.
제이와 그녀는 어디에서 묵을지를 의논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녀가 우리와 같은 곳에 묵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행 중 한국인을 만나기 싫어하는 타입의 여행자였다. 한국인보다는 현지인 친구를 사귀어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충분히 그녀를 이해했다.
그녀는 오흐리드가 마지막 여행지라고 했다. 좀 더 긴 여행을 준비했지만 한국에 있는 애인이 보고 싶다고 해서 비행기표를 앞당겼다고 했다.
- 애인이 참 나쁘네요. 평생 다시 하지 못할 여행이 될지도 모르는데 오라고 조르니.
- 그렇죠?
여자가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언젠가 인도에서 만났던 커플이 생각났다.
나는 그들과 마날리에서 레로 가는 버스를 함께 탔다. 밤 12시에 출발한 버스는 밤 8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그 사이 나는 두 번이나 토했다. 멀미와 고산증은 견디기 힘들었다. 어떤 때는 미니버스 안으로 흙먼지가 가득하게 들어왔다. 나는 되도록 말하지 않았다. 말할 힘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조금은 어색해보였지만 남자는 여자를 참 잘 챙겼다. 여자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의식을 잃으면 죽는다는 것을 아는 남자가 연인을 살리기 위해 애를 쓰는 듯한 간절함이 느껴졌다. 둘은 나를 호텔에 남겨두고 판공초를 여행 하고 돌아왔다. 그 아름다운 호수에서 둘은 점핑을 하며 평생 잊기 힘든 장면을 찍어 내게 보여주었다. 둘은 각자 한국에 연인이 있었다. 밤이면 한국에 있는 연인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둘은 다시 만났다. 그 사진들은 잘 보관되고 있을까.
그녀도 사진을 남겼을까, 마케도니아인과 함께 여행한 사진을. 그 사진을 돌아가서 남자 친구에게 보여 줄 수 있을까.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내게는 이상하게 그런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섭섭하냐고 제이가 물었다.
그건 행운이라고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