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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사치

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

by 카렌

- 설탕도 사치품이었어.


따뜻한 밥이 풍기는 달달한 냄새를 가득 호흡으로 들이마시며 내가 말했다.

- 그래서 일부러 충치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어. 충치는 설탕을 많이 먹는다는 증거였거든. 자랑하기 위해 일부러 이를 상하게 했다는 것이 말이 되니?

-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어. 안경을 쓰고 싶어서 일부러 텔레비전을 가까이에서 보고 그랬어. 안경을 쓰면 왠지 공부를 잘하는 것처럼 보이잖아.

- 예전에는 못으로 이 사이를 긁었대.

- 왜?

- 금니를 한 게 예뻐 보여서. 그분들은 아주 후회를 하시지.


우리는 잠옷을 입고 밤에 외출을 하는 중국인과 가죽 재킷을 입는 태국의 부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며 깔깔 웃었다. 중국인들이 그러는 것은 나 잘 때 잠옷 입는 사람이야, 이런 뜻이고 태국인들이 그러는 것은 이 더운 나라에서 필요 없긴 하지만 난 이걸 살 수도 있는 사람이야,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사치품은 원래 그렇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후추 없이도 서양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었지만 후추를 보자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볐다. 후추의 기능과 좋은 점에 대해서는 인정을 한다. 하지만 일부러 손님을 초대해서 후추가 가득한 방을 보여주는 것은 뭔가. 그걸 보여주기 위해 자주 파티를 열었던 귀족들도 있다. 다 먹지도 못할 거면서 말이다.


제이를 데려가고 싶은 호텔이 있다.


그 호텔은 다낭에 있는데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이를 수 있을 정도로 바다가 가깝다. 해가 아직 뜨겁지 않은 오전에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달려온 가족들이 물놀이를 즐긴다. 그 현지인들 사이에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을 보고 처음엔 저건 뭐지, 하고 놀랐다. 알고 보니 그것은 목욕 가운이었다. 그 가운을 입은 사람들은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샤워를 한 다음 잠시 몸을 가리기 위해 호텔 안에서 입는 가운을 사람들은 입고 나와 유유히 해변 산책을 즐긴다. 그 장면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 지금 호텔에서 나온 사람이야. 나 이 정도는 입을 수 있는 사람이야.


물론 나도 다음 날부터 목욕 가운을 입고 해변에 갔다. 웃겼지만 웃긴 사람이 되기로 했다.

-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꼭 너와 함께 여기 와서 목욕 가운을 입고 해변을 걸어야겠다. 한국에선 우리가 뽐 낼 만한 게 없잖아.

제이는 웃으면서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제이와 내게 사치가 있다면 여행인 것 같다.


우리는 집을 소유하거나 통장에 많은 돈을 남기는데 남들보다 애쓰지 않는 것 같다. 값비싼 취미 생활도 없다. 골프도 칠 줄 몰랐고 좋은 옷을 입을 줄도 몰랐다. 하지만 남들보다 여행은 많이 다니고 있었다. 우리의 사치는 점점 발전해 남의 나라에서 방을 얻어 밥을 해 먹고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관광과 우리의 여행은 분명 차이가 있었고 형식으로 보면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근사한 호텔과 좋은 레스토랑을 선호했지만 우리는 시장과 현지 사람들의 삶과 밀착되는 것을 더 좋아했다. 피곤하게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그렇게 했던 것은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사치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우리는 다음 여행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코소보를 거쳐 세르비아로 올라가는 루터를 생각했다. 알바니아를 거쳐 크로아니타아나 몬테네그로로 가는 방법도 생각했다. 최종 목적지는 루마니아여야 했다. 부쿠레슈티에서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해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코소보를 거치면 세르비아를 갈 수 없다는 정보를 얻었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정보였기에 정확한지는 알 수가 없었다. 세르비아가 아직 코소보를 자신의 나라 일부로 보기 때문에 허락도 없이 독립을 한 코소보를 적국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세르비아를 통해 코소보를 가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코소보가 세르비아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알바니아를 거쳐 가는 길은 루마니아에서 너무 멀어지는 것 같았고 코소보에 들어갔다가는 세르비아로 나오질 못해서 낭패를 볼 것 같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우리가 정한 루트는 오흐리드에서 다시 스코페로 돌아간 후 거기서 야긴 기차를 타고 한 번에 쭈욱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로 올라 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