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
우리가 넋 놓고 오흐리드 호수를 바라보고 있을 때 알렉산더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찾아왔다.
- 아파트 필요하지 않아요?
호수의 마법에 걸려 있던 우리는 그 목소리에 깨어났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부터 기분이 좋았다. 센터에 가까워질수록 골목 끝에 보이는 파란 호수의 조각들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점심 때가 지났지만 식당을 찾을 생각은 않고 배낭을 내려놓고 얌전히 호수만 바라보았다. 배고픈 생각이 들 수 없었다.
아저씨의 자전거는 브레이커를 잡지 않았지만 정확히 우리 앞에 멈추어 섰다.
처음부터 여기에 멈추어 설 수 있을 만큼의 동력으로만 달려온 것 같았다.
- 영어 할 줄 알아요?
그렇다고 대답하자 아파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느끼하거나 뻔뻔한 호객꾼의 느낌은 나지 않았다. 천천히 조용히 말해주었다. 혹시 우리가 기분 나빠하거나 귀찮아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우리의 표정을 살폈다.
침대가 세 개나 있는 아파트였다.
작은 부엌도 있고 마당엔 정원도 있었다. 아파트라고 해서 우리식으로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펜션이라고 해야 할까, 아파트라고 소개했던 아저씨의 집은 그랬다. 가격도 집도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들어가서 물을 틀어 샤워기를 들어보았다. 물줄기도 물의 온도도 마음에 들었다. 점검을 마친 후 제이에게 윙크를 보냈다. 오케이라는 뜻이었다.
아저씨는 틈만 나면 우리를 살폈다. 호텔이 아닌데도 새 수건을 매일 갖다 주었다. 아침마다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 머물기 괜찮아요?
- 그럼요.
-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줘요.
내가 필요한 게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으면, 쉽게 선택형으로 바꾸어주었다.
- 화장실의 종이라든지. 비누라든지.
대답을 하지 않으면 질문이 어이질 것 같아서 내가 말했다.
- 차가 좀 필요해요.
그러자 그는 환하게 웃고는 다시 나타나 차 상자를 내게 안겨주었다.
- 다 먹어도 돼요.
오흐리드에서 우리가 한 것은 산책 밖에 없었다.
일어나자마자 산책, 아침을 먹고 난 다음 산책, 점심을 먹고 난 다음 산책, 저녁을 먹고 난 다음 산책. 산책을 나갈 때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어젯밤 철썩이든 소리는 호수의 파도였고, 백조의 발은 검은 색이었다. 호수의 건너편은 알바니아였다. 키릴 형제가 이곳에서 키릴 문자를 완성했다. 오후가 되면 사람들은 카페에 모였다. 아이들은 콜라를 마시고 어른들은 맥주나 커피를 마셨다.
호수에서는 뛰어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사는 동네와는 반대였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 호수에는 저녁이 되면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그들 속에 끼어 걷다가 사람들이 왜 모두 시계 반대 방향으로만 뛰게 되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사람들은 일찍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흐리드 성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야경이 만들어졌는데 그건 회사의 불빛이 아니었다.
- 우리나라를 방문한 한 여행자가 이렇게 물었대. 한국의 야경은 유독 아름다운데 비결이 뭐죠? 외국인을 안내하던 한국인이 뭐라고 대답했는 줄 알아?
- 뭔데?
- 야근 때문이죠.
우리는 깔깔 웃었다. 지난 밤 우리가 떠나온 곳에서 누군가는 야경을 완성하는 반짝임이었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
깜깜한 호수에는 조금 거칠게 파도가 치고 있었다. 나는 호수 위에 떠있는 백조를 보았다. 파도가 일렁일 때 백조의 몸통 절반이 사라졌다 나타났다.
- 저기서 잠을 잘까?
- 그렇겠지.
제이가 대답했다.
산책길에 알렉산더 아저씨를 만나곤 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호수를 천천히 돌다가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 다가왔다.
- 난방기는 켜두고 나왔어요?
- 아니요.
- 켜두고 나와도 되는데, 들어갈 때 춥잖아요. 제가 켜 줄게요.
처음엔 그의 친절을 경계했다.
친절한 사람들에게 여행지에서 많이 당했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 아파트를 향해 바퀴를 굴려갈 때, 나는 어디선가 보았던 한 여행자의 기록이 떠올랐다. 호텔과 게스트 하우스와 민박. 그중에 가장 믿을 수 없는 곳이 민박이죠. 왜냐면 주인 가족들이 열쇠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곳에서든 호스트가 엑스트라 키를 갖고 있을 테지만 그가 왜 그런 기록을 남겼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St. Jovan Kaneo'에 여러 번 다녀왔다.
올드 타운 쪽의 골목을 지나 호숫가의 길을 따라가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인데 절벽 위에 세워진 교회였다. 그 길이 너머나 아름다워서 이른 아침에도 가고 오후 무렵에도 가고 저녁 무렵에도 갔다. 도중에 있는 호숫가의 카페에 앉아 노을에 기대어 책을 읽다가 한밤중에도 찾아갔다. 달빛에 광활한 호수가 반짝였다. 검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유독 우뚝하게 여겨졌다.
- 고흐가 오흐리드를 알았더라면 아를이 아니라 이곳을 선택했을 거야.
어떤 이야기 끝에 내가 말했다.
혹시나 해서 교회 문을 열어 보았는데 잠겨 있었다. 우리는 난간에 앉아 겨울바람을 맞으며 호수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곳에 둘만 있게 되었을 때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나는 상상했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가 천국에서 추방된 후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을 때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그들 몸을 가린 것을 기억해냈다.
문을 열었을 때 아파트는 따뜻했다.
알렉산더 아저씨가 난방기를 켜두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없는 동안 나갈 전기세를 걱정했는데 아저씨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마지막 날 아저씨의 친절에 보답할 요량으로 청소를 했다. 시트를 정리하고 이불과 수건을 예쁘게 개었다.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봉지에 담아서 깔끔하게 처리했다.
우리를 버스터미널에 데려다 주기로 한 아저씨는 정확한 시간에 방문을 두드렸다.
제이의 배낭을 받아 트렁크에 실은 후 뒷문을 열었다. 근사한 호텔에서 대접받는 여자처럼 제이는 차에 올라탔다. 나는 그의 옆에 앉았다. 차를 몰고 가면서 어색하지 않게 그는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가 세르비아 사람이고 부인은 마케도니아 사람이라든가. 우리가 가야 할 곳인 베오그라드는 여기서 몇 킬로미터나 떨어졌고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지난 여름에는 손님을 태우고 호수의 어딘가로 갔던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 물건을 보고 나면 알 수 있다.
물건을 팔기 위해 장사꾼들이 손님들의 욕망을 일깨울 때 쓰는 말이다. 나는 알렉산더 아저씨를 만나고 나서 남은 내 꿈을 묻는 사람에게 한번쯤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 오흐리드에서 자전거를 탄 친절한 호객꾼이 되고 싶어요.
최고의 친절이 무엇인지 나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