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없이 걷다

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

by 카렌

정처 없이 걸었다. 우리는 오흐리드에 대한 아는 게 적었다.


-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곳 100곳에 선정된 곳이래.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이렇게 되물었다.


- 그건 누가 정한 거야?

사람들은 어딘가에 소개된 장소에 가서 꼭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인터넷에는 가 봐야 할 곳에 대한 정보가 넘쳤다. 아름답구나, 놀래서 막상 가보면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없었다.

히말라야에 갔다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 사진으로 너무 많이 봐서 감동이 없지 않아?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카파도키아에서 벌룬 투어를 할 때였다.

어디서 본 곳으로 계속 여행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같아지고 싶어서 일 것이다.


남들이 거기 가봤으니 나도 가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언젠가 두 노인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 형님 여기 가봤어요?

- 응.

- 여기는 가봤어요?

- 응.

- 여기는요?

- 거긴 안 가봤어.

마침내 할 말이 생겼다는 듯 동생이 다음 말을 했다.

- 아, 왜 안 가보셨어요. 가보세요. 거기 좋아요.

그게 끝이었다.

다른 곳은 좋지 않았을까. 거기서 뭐가 좋았는지는 왜 말하지 않는 걸까. 그 말에 왜 형은 꼭 가봐야겠다는 결기의 표정을 지었던 걸까.

- 남들처럼 한 번 살아 봐야 하지 않을까.


종종 어른들의 말씀 속에서 그런 문장이 나오곤 했다.

남들처럼은 어디까지일까.


한번은 어느 사막 가까운 도시에서 여행자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


누군가 왜 여행을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꺼내 놓았다.


바쁜 일상을 잊어보기 위하여. 자아실현을 위하여 등등 젊은이들이 여러 가지 이유들을 늘어놓았지만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노인 한 분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이유는 나중에 다 자랑하기 위해서야. 어디 갔다 왔는지가 중요하지 뭘 느꼈냐는 경로당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아.

여행에 대해서 우리는 별 계획이 없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택시 기사에게 당하고, IS 때문에 터키의 동부가 위험하다는 소식을 듣고 지도의 서쪽을 보았다. 거기 불가리아가 있었고 여행 중에 우연히 마케도니아 이야기도 들었고 오흐리드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 여기는 어때?

- 좋아.

하고 제이가 말했다.


인과 아웃할 도시를 이스탄불로 정하고 나머진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


어디에서 자야할지, 어디를 봐야 할지, 무엇을 먹어야 할지.

직장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 때 동료는 내게 물었다.

- 그러면 그분이 따라 가신대요?

제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 함께 가는 건데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되물었다.


- 그런데 무얼 계획해야 하는 거죠?

다른 동료가 말했다.


-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보아야 할지 동선을 좀 정해야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우리는 요새로 올라가는 길에 오래된 성당 몇 곳을 지나게 되었다.


나중에 그 성당들이 제법 유명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화를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도 방문했다. 어디를 가야지 정하고 나오지 않아도 걷다 보면 가볼 곳엔 다 가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갔던 곳을 다시 가기도 했지만 시간마다 느낌이 다 달랐다. 아무리 유명해도 아무런 느낌을 줄 수 없는 곳은 여러 번을 스쳐도 그냥 그랬다. 책에서 본 것을 확인하는 것보다 내게는 새로운 느낌이 중요했다.



호수를 다시 산책하다가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났다.


- 보트 타 볼래?


그가 가진 보트는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새 거에다가 깨끗했고 가죽시트였다. 무엇보다 그의 얼굴은 보트를 운전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영화배우를 해도 주연배우로 손색이 없는 얼굴이었다.


- 잘못 태어나면 아무리 잘 생겨도 배를 몰아야 하나 봐.


우크라이나에 가면 우리나라의 유명 배우들을 닮은 남녀들이 밭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생각하며 내가 말했다.


- 근데 참 만족스러운 얼굴이야.


제이가 말했다.


삶에 아무런 불평이 없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그의 배에 실려 안내를 받으며 호수 안에서 오흐리드의 전경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손가락을 가리키는 곳마다 성당이었다.


- 저기 성당이 있었나?

우리가 산책길에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때가 되면 열리는 축제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 이 도시에 성당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

제이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다.

- 무려 365개나 되었지. 그때는 하루에 한 번씩 성당을 방문하며 일 년을 보냈어.


나중에야 나는 이 도시의 별명이 발칸의 예루살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