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그라드행 야간 기차

마케도니의 스코페

by 카렌

불가리아를 사람들은 발칸의 장미라고 부른다.


그만큼 장미가 유명하기 때문이다. 유럽 사람들이 사용하는 장미 오일의 절반이 불가리아에서 생산된다.


3000송이를 따면 1g 정도의 오일을 얻을 수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질 좋은 오일이 만들어진다. 일교차가 클수록 장미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일부러 사람들은 그런 곳에 장미를 심었다. 그곳은 지금 장미 계곡이라 불리고 매년 오월 축제가 열린다.


누군가는 인내를 통해 향기를 축적했다고 장미를 추켜올리기도 한다.


장미가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덕을 보는 것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런 말은 사기에 가깝다.


칭찬 받는 것이 좋았는데 누군가 내게서 질 좋은 오일을 뽑아내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의 스트레스는 나의 것인가?


직장에서 일을 하다 그런 생각이 들어 일을 놓았다. 조금만 더 참아라,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나이를 먹었다. 질 좋은 내가 되어보려고 노력했는데 요즘엔 그게 뭔가 싶을 때가 많다.


장미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 문은 세 번 열렸다.


첫 번째 문을 연 사람은 마케도니아 사람이었고 두 번째 문을 연 사람은 세르비아 사람이었다. 국경을 넘어가고 있는 것이 실감 났다. 여권을 건네고 다시 돌려받았다. 모든 검문이 끝나자 마지막으로 차장이 문을 열었다. 그는 담요와 시트를 내게 건네며 말했.

- 오늘 밤 여긴 너희 둘밖에 없어.


그리고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떠나고 나는 돌아보았다. 이층 침대 중 아래는 망가져서 거기 앉아 있는 제이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의 표정은 오늘 밤 우리가 그곳에서 뭔가를 해도 좋다는 신호로 읽혔다. 생각 끝에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리는 함께 시트를 깔았다.


시트에는 잔 구멍이 많았다. 길게 찢어진 부분도 있었다. 낡았지만 눈이 부시도록 하얀 시트였다. 이렇게 낡은 것을 어떻게 이렇게 하얗게 만들 수 있지? 보고 있자니 감동이 밀려왔다. 나라의 경제 수준과 그들의 청결성이 시트 한 장에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제이가 문을 잠갔다.


나는 그 문이 밖에서 열릴 수 있는지 여러 번 확인했다. 단순하고 허술한 자물쇠지만 밖에서 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문틈 사이로 자 같은 것을 집어넣어 문을 연다고 했다. 보통 기차가 역에 도착했다가 다음 역으로 출발할 때 그러는데 짐을 들고 훌쩍 뛰어내리면 당한 사람 입장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당한 사람들의 사례가 여행 카페에 많았다. 무엇보다도 정작 제이가 걱정하는 것은 방금 만난 히피였다.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에 올라갔을 때 그가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아주 반가운 표정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하면서도 악수를 나누었다. 그후 기차가 도착할 때까지 그는 우리 곁에 서서 지저귀었다. 그에겐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둘은 오흐리드를 여행했고 산에서 자다가 카메라와 돈과 또 어떤 것을 분실했다고 했다. 그가 분실한 카메라는 18살 생일 날 어머니가 사준 것인데 사실을 알면 어머니가 자신을 죽일 거라고 했다. 둘의 모습은 노숙한 사람답게 지저분하고 얼굴은 거칠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그는 내게 쉼 없이 이야기를 걸었고 그의 친구는 영어를 못하는지 좀 떨어져 담배를 피웠다. 그는 돈이 없어 세르비아까지 차장에게 빌면서 갈 거라고 했다. 플리즈 플리즈 하며 비는 액션을 취하며 웃었다. 가끔 친구의 담배를 건네받아 한 모금씩 빨았다. 그의 영어는 조금 빨세르비아인다웠다.


어떤 이야기 끝에 그는 본색을 드러냈다.


베오그라드에서 묵을 호텔을 정했냐고 물었고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세르비아에 대한 조언도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을 좀 도와 줄 수 없냐고 물었다. 차장에게 자신이 걸렸을 때 호의를 베풀어달라고 했다. 내 말 이해했니?라고 그가 물었을 때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제이는 벌써부터 그의 말에 경청하지 않고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그는 여러 번 같은 말을 되풀이했고 나는 여러 번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기차가 도착했고 우리는 마지막 칸으로 가서 기차에 올랐다. 그는 우리와 다른 칸에 올라탔는데 나중엔 우리 칸까지 기웃거리고 있었다. 숨을 곳을 찾는 것 같았다.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제이가 내게 조언을 했다. 여기서 영어를 잘 하는 애들은 위험해.


제이는 망가진 침대 위에서도 쉽게 잠이 들었다.


거위털 파카를 입고 여권이 든 작은 가방을 비스듬히 맨 채였다. 몸을 웅크린 것으로 보아 무언가로부터의 경계를 모두 풀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담요를 끌어올려 제이의 목까지 덮었다. 베개를 고쳐 베게 했다. 그리고는 맞은 편 침대에 앉아 제이를 바라보았다. 내가 돌볼 수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다시 다가가 손바닥을 뺨에 대보았다.


베오그라드 행 기차가 도착했을 때 나는 무슨 유령이 등장하는 줄 알았다.


지저분하고 초라한 모습은 족히 백년은 되어 넋이 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 밤은 우리가 이 기차의 영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