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아타튀르크 공항
철이 든다는 건 뭘까.
- 철이 없구나.
예전에 이 말을 들으면 한없이 부끄러워지기만 했는데, 이젠 마음이 불편해져서 화가 날 때도 있다.
날 이용하려고 하는 것 같다.
- 우리가 누군가를 험담할 때는 그 사람이 내게 이익이 되지 않아서 일 때가 많아. 공익이니 정의니 합리성이니 이런 것과는 상관없지.
제이가 말했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애 둘을 데리고 내 뒤에 서 있던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가 오랜 만에 그 말씀을 듣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애 둘을 데리고 패키지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여행객이었다.
한꺼번에 돌아가는 여행객들 때문에 티켓팅을 위한 줄은 길고 지루했다.
- 어디를 여행하셨나요?
- 터키요?
- 며칠이나 여행하셨어요?
- 8박 9일이요.
- 얼마인가요?
- 135만 원이요.
- 괜찮네요. 왕복항공료만 해도 그 정도 되는데.
- 자유여행보다 패키지여행이 여러 모로 실용적이에요.
아주머니는 비용과 호텔 수준, 안정성 등을 따져볼 때 패키지가 자유여행보다 월등히 나은 것이라는 설명을 했다. 매사 치밀하게 따져보고 선택하는 것 같았다.
여기까지 듣고 말았어야 했다.
- 아버님은 안 오셨나 봐요?
- 일해야죠.
- 아버님이 조금 서운 할 것 같아요.
가족 모두가 함께 여행을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뜻으로 던진 가벼운 말이었다.
- 서운하지 않아요.
남편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 아주머니가 말했다.
- 이걸 서운하게 생각한다면 아직 철이 들지 않아서 그래요.
내가 선뜻 말을 잇지 못하자, 아주머니는 쇄기를 박으려는 듯 말했다.
- 내가 번 돈으로 아내와 자식들이 이렇게 즐겁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데, 그걸 서운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죠.
단호하고도 교훈적인 말씀이었다. 남자라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깊은 믿음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 믿음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가차 없이 꾸짖고 바른 길로 인도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그 순간, 내가 돈 버는 기계인가, 한 번쯤 이런 생각에 빠져든다는 중년의 남자들이 떠올랐다.
- 가끔씩 아저씨들이 섭섭하다는 이야기를 하시던데요.
- 그건 철들지 않은 남자들 이야기죠.
아주머니는 나를 훑어보더니 말을 이었다.
- 아직 결혼 안 했죠?
내가 답을 하기도 전에 속사포처럼 다음 질문을 던졌고 결론을 내렸다.
- 애 없죠? 철이 없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만 대화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지도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 지도 밖으로 걸어 나가서 다른 사람의 지도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생각과 관점이 다른 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섣부른 논평조의 태도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누구나 한 번의 삶을 살고, 그것은 한 번의 여행에 불과하다.
그 아주머니도 나도 그분의 남편도 그 이상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주머니는 여러 번의 환생을 거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통달한 것처럼 당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