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by 카렌

자리에 앉자마자 신발을 벗었다.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제이를 돌아보았다. 제이도 신발을 벗고 있었다. 우리는 실내화로 갈아 신었다.

비행기는 날아올랐다.


비행기가 하늘에서 가만히 떠 있기만 해도 지구의 자전 때문에 목적지에 가닿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비행기는 지구와 한 몸처럼 움직인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다. 내가 가진 생각들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 많았다.


열 시간의 비행이었다.


자전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지만 올 때보다 더 빨리 도착한다. 하지만 열 시간도 어느 순간부터 견디기 힘들어졌다.


나는 불 꺼진 비행기 속을 빙글빙글 걸었다. 맨 뒤에서 스튜어디스들이 아픈 여학생의 몸을 주무르고 있었다. 영화를 보거나 눈을 감은 채 음악을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신음소리를 들었다. 제법 나이가 든 그는 몸을 조금씩 뒤척이며 소리를 감추려고 했다. 비행기를 타기 전 나는 그를 본 적이 있다. 패키지 관광객에 끼어서 그는 이런 자랑을 했다.


- 우리 딸들이 열심히 돈을 모아 보내 준거예요.


사람들은 그 딸들을 열심히 칭찬했다


외국에도 효도관광이라는 것이 있을까? 내가 물었을 때 제이는 글쎄, 하며 답을 하지 못했다

결혼 삼십 주년 기념으로 온 부부도 있었다.

- 애들 다 키우고 이제야 여행을 왔어요.


사람들은 그동안 수고 많았다며 그들을 부러워해주었다


그들 역시 신음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힘든 것이다


몇 바퀴 돌아 자리에 앉았더니 실내화가 터졌다.


대체로 비행기에서 나누어주는 실내화의 수명은 정확했다. 조심해서 신어도 챙겨서 가져갈 수가 없었다. 제이는 이렇게 정확한 수명을 알고 싶어 했다.


- 언제까지 우리가 미래를 준비하면서 살아야 하지?


언젠가 제이가 던진 질문이었다.


- 고생하셨습니다.


패키지 관광을 끝내고 헤어질 때쯤 꼭 이렇게 인사하는 어른들이 있다.


여행이 왜 고생이어야 할까?


내게 이런 의문을 갖게 한 그런 인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아쉬워서 여행이 마냥 즐겁기만 했던 조금 더 젊은 시절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 왜 사람들은 젊었을 때 여행을 하지 않을까, 우리처럼 말이야?

그냥 툭 던진 말에 제이가 정확히 대답했다.

- 시간이 없어서지. 신혼여행을 가장 멀리 가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가 어딘지 알아?

- 설마, 우리나라는 아니겠지.

- 왜 아니겠어. 왜 그렇게 멀리까지 신혼여행을 가려고 하냐면 말이야 그때가 아니면 긴 휴가를 낼 수가 없거든. 고작해야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지만.

- 우리나라엔 시간이 없는 거구나.


라다크와 마날리에서, 그리고 방콕에서 본 장기체류자들이 떠올랐다. 동양인들보다 서양 인들이 더 많았다. 동양인들 중에는 한국인들도 꽤 있었다. 삼십 대 이상의 한국인들은 서양인들과 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그들은 회사를 그만 두었거나 돌아가도 다시 다닐 수 있는 회사가 정해져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달리 말하면 이주이상의 여행을 하려고 하면 한국에서는 회사를 관둬야 했다. 하지만 서양인은 긴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물론 회사에서 허락한 시간들이었다.

양말을 벗었다.


편했다.


나이 든 아저씨들처럼 양말만은 벗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역시 다짐이란 무너지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끙끙 않는 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 한 동안 여행 생각은 없을 것 같아.

자신에게 속삭이듯 제이가 말했다.

나도 그렇게 나에게 말했다.

- 다시 그립지 않을까?

- 아쉬워하지 마, 또 오면 돼.

제이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