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의 티미쇼아라
인디언들은 말을 달리다 들판에 서서 달려온 쪽을 한참 바라보았다고 한다.
영혼이 따라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다른 이야기를 떠올린다. 내 이야기 속에서는 영혼이 먼저 가 텅 빈 들판에서 기다리고 있다. 몸이 따라오도록 한참을 기다리는데 소식이 없다.
몸과 마음의 불일치.
나의 짜증은 그때 생겨났다.
언제부턴가 벌어진 몸과 마음을 다시 잇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 마흔이 되면 더 이상 여행은 못할 거야.
한 선배가 내게 조언을 했다.
왜?
-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아무리 사랑해도 계속할 수 있는 건 없어.
제이는 아직 침대에서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탁자가 놓인 테라스로 나가 바람을 쐬었다.
호텔에 들어와 우리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벽을 장식한 그림과 바닥의 붉은 카펫은 풍성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나는 중세의 어느 귀족의 집에 손님으로 온 것 같았다. 와이 파이 비번은 탁자 위 작은 액자에 적혀 있었다.
그걸 본 내가 말했다.
- 주인은 분명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즐기는 사람일 거야.
7시가 되자 남자가 방문을 두드렸다.
저녁을 예약했다. 제이를 깨워 아래층으로 향했다. 내려가는 복도와 계단엔 불이 켜지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촛불 켜진 식탁 위로 음식이 차려졌다. 브로콜리와 버터에 구운 닭고기였다. 함께 나온 빵은 하얀 천에 덮여 있었는데 따뜻했다. 접시 위에 접시를 놓는 루마니아 식기는 어색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느낌이었다.
- 술 한 잔 할래요?
남자가 물었다.
- 아니요. 괜찮아요.
내가 말했다.
- 환영의 술이고 무료랍니다.
환영이란 말에 즐거워졌는지 무료라는 말이 나를 즐겁게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한 잔 받기로 했다. 그는 술잔을 식탁에 놓으며
- 웰컴!
이라고 말했다.
잔과 접시를 비우고 나자 남자가
- 커피?
하고 물었다.
우리는
- 예스.
라고 대답했다.
커피를 마시는 우리에게 다가와 남자는
- 스트롱?
하고 물었다.
우리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는 레몬이 담긴 물이 비자 다시 물을 채워 주었다.
내가 다녀 본 어느 호텔도 이보다 훌륭하지 않았다.
서비스도 서비스지만 이 호텔의 분위기는 특별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선 만들어 낼 수 없었다.
호텔에는 방이 셋 밖에 없었고 손님은 우리 밖에 없었다. 남자는 우리에게 제일 좋은 방을 내주었다.
침대가 있는 방 천장에는 하늘이 보이는 유리창이 있었고 거실에는 성주의 딸이나 사용할 수 있는 소파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삼일 동안 외출은 삼가고 호텔을 즐기기로 했다.
제이는 일찍 잠이 들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늦은 밤까지 책을 읽다가 찾아온 행복한 느낌을 맞이했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도 훌륭한 곳이었다.
지금쯤 제이의 영혼은 어디쯤 도착했을까.
몸과 마음의 속도도 중요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속도도 중요하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앞서거나 뒤처지는 서로의 속도를 감당할 수 있지만 체력이 바닥난 상태라면 상대방의 속도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혹시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 짜증을 낸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다. 그 화는 상대방에게가 아니라 속도를 견디지 못하는 자신을 향한 것이라고.
그러니까 각자의 몸과 영혼이 헤어지는 일이 없도록 여행의 어느 날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만히 머물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