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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루마니아의 티미쇼아라

by 카렌

당신의 어머니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동유럽에서 이런 질문은 상대방에게 무례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 조금씩 피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 동유럽 사람들은 키가 작네요.


그렇게 내가 말했을 때 한 불가리아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 징기스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다녀가기도 했지. 우리 아이들도 태어날 때 몽고반점이 있어.


동양인의 피도 섞여 있다는 말씀이다.


내가 이름을 묻자, 파울로라고 했다.

자신의 이름이 조금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파울로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 바울이라고도 하지.

- 어떻게 결혼했어요,


하고 묻자

- 여기 일하러 왔다가 만났지.

- 역시 사람은 일을 해야 해.

옆에서 듣고 있다가 제이가 말했다.

파울로는 이탈리아 사람이고 그의 아내는 루마니아 사람이었다.


국제결혼에 대해 내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짓자 그가 말했다.

- 나의 어머니는 리투아니아 사람이고 아버지는 체코 사람인데 이탈리아에서 만났어.

사실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인류의 여행에 대해 생각해보면 말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아프리카에서 시작해서 유럽 전역을 여행했다. 그때 어떻게 갔겠는가. 걸어갔다. 인간이 가지 못할 곳은 예전부터 없었던 것이다. 어떤 네안데르탈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스페인 쪽으로 걷다가 지브롤터 해협을 만났다. 그들은 배를 만들 능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했겠는가. 아니다. 스페인 지브롤터 암벽에 있는 고르함 동굴에는 마지막 네안데르탈인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들의 긴 여정을 증명하듯 이집트, 이스라엘, 시리아 쪽으로 돌아갔던 흔적이 조지아의 작은 호수에서 발견되었다.


파울로의 유전자는 여기 정착하기 위해 긴 이동을 했을 뿐이다.


- 이탈리아 남자들이 정말 그렇게 잘 생겼나요?

- 물론이지.


그는 자랑스러워했다.


이탈리아에는 옥수수 아저씨가 유명하다.

공원에 서 있으면 그 아저씨가 다가와 손에 옥수수를 놓아준다. 그러면 비둘기들이 날아와 그것을 먹고 가는데 아저씨는 그때 돈을 요구한다. 왜,라고 물으면 체험비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기에 대해 말하자 그가 말했다.


- 그런 사람들은 파리에도 있고 방콕에도 있어. 우리 동네의 광장에도 무척 비둘기가 많지. 혹시 모르니 조심해.

어떻게 사기꾼들의 수법이 전 세계적으로 같을까, 하며 우리는 함께 웃었다.


파울로는 아내와 함께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아내는 음식을 하고 그림을 관리하며 호텔의 분위기를 디자인한다. 그는 손님들의 짐을 들어주고 심부름 같은 것을 한다. 우리가 브라쇼브 행 기차를 원한다고 하자 우리를 태우고 역으로 가 표를 예매해 주었다. 아내가 고상하다고 하면 파울로는 투박한 편이었다. 옷차림부터가 달랐다. 아내는 언제나 우아한 그림과 아름다운 앤틱 가구가 가득한 호텔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옷을 입었고 파울로는 지금 당장이라도 막일을 할 수 있는 편한 차림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조합이 어색해 보이기도 했는데 또 상반된 분위기가 서로를 끌어당겼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우리는 티미쇼아라 역에서 헤어졌다.


그는 기차 안까지 들어와 제이의 배낭을 선반 위에 올려 주었다. 나는 모든 헤어짐에 익숙하지 못하다. 이별의 형식을 잘 모르겠다. 악수를 하고 헤어져야 하는지. 굿바이 하고 바로 돌아서도 되는지. 아쉬운 눈빛으로 얼마간 서로를 응시해야 하는지. 하지만 나는 대개 잘 가, 짧게 한 마디 하고 바로 돌아서는 편이다.

파울로는 마지막으로 내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 이 기차는 방송을 해주지 않아. 시계를 잘 봐야 해.


그러고는 급히 기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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