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는 착하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by 카렌

내가 너라면 그렇게 꽉 움켜쥔 주먹으로 자신과 타인을 대하지 않으리라고 감자에게 말한 이가 있다. 생긴 걸 보고 시비를 걸어 본 것인데 유럽에서 감자가 정착하기까지의 역사를 생각해본다면 감자는 그런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금에야 서양 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되었지만 감자는 천대 받던 음식 중 하나였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다녀온 후 토마토, 옥수수와 함께 유럽에 들어왔다는 것은 모두들 알 것이다. 처음 본 음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둘 중 하나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그것을 맛보려는데 적극적이거나, 보는 순간 뭔가 거부 반응이 일어서 멀리하려는 것. 새로운 것에는 호기심이 들면서도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솔직한 우리의 감정이다. 그래서 토마토도 식용이 아니라 관상용으로 재배되었을 것이다. 감자는 생긴 것도 문제였지만 태어난 곳이 더 문제였다.

감자가 사는 곳은 아시다시피 땅속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어떻게 자라는지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땅 속이라는 곳에는 햇빛이 미치지 못한다. 빛과 어둠에 대한 인간들의 편견도 작용했다. 빛도 보지 않고 자란 음식. 사람들은 성경을 뒤지기 시작한 후 감자가 책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감자에 대한 결론은 이렇게 내려졌다. 악마의 열매다. 영국인들은 대기근 중에도 먹을 수 있는 감자가 있었지만 먹기를 거부했다.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한 술 더 떴다. 아담과 이브를 천국에서 쫓겨나게 만들었던 열매가 감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 열매가 사과라고 알고 있지만 성경을 펼치고 읽어보면 사과라는 말은 없다. 그냥 ‘열매’라고 되어 있다. 러시아 기근 시기에 그 열매가 감자라는 소문이 퍼졌다. 먹는 순간 지옥행이라고 믿었다. 이런 태도는 구근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러시아인들의 두려움을 잘 보여준다. 지금도 러시아 사람들이 먹는 구근류는 감자 하나뿐이다. 우리는 연근도 먹고 토란도 먹고 고구마도 먹고 마도 갈아서 영양식으로 먹지만 러시아 인들에게는 여전히 이상하다.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전체가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

감자는 러시아와 가장 늦게 친구가 되었다. 프랑스와는 18세기 말에 친구가 되었지만 러시아의 요리사들은 19세기 중반이 되도록 감자의 존재를 모르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감자와 가장 친한 친구가 러시아다. 감자의 최대 생산국이 된 것이다. 토마토가 빠진 이탈리아 요리를 상상할 수 없듯, 감자가 빠진 러시아 요리는 더 이상 어떻게 생각해 볼 수가 없게 되었단다.

감자에 대해 이렇게 떠올려 본 것은 오늘의 식탁 때문이다. 곧 제이가 도착할 것이다. 아홉시에 공항에 도착. 택시를 타고 오면 열시나 열한시쯤. 저녁을 먹었을까. 먹었더라도 부실할 것이다. 오로라 항공은 내게 기내식으로 샌드위치 하나를 주었는데 연어가 들어간 것이었다. 아주 짜서 삼킬 만한 것은 아니었다. 다시 먹고 싶지 않은 것을 겨우 질겅질겅 씹었다. 늦은 저녁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마트를 떠올렸다. 마트에는 여러 가지 조리된 음식을 팔았다. 여행을 앞두고 제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먹는 게 가장 무서워.” 먹는 게 일이 되어버렸던 동유럽 여행이 한몫했다. 그땐 모든 음식이 지나치게 짜서 비싸게 돈을 주고도 고통만 받았다. 그러나 그때도 딱 한 가지 우리를 위로 음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감자. 감자는 전 세계 어디서나 익숙한 맛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처음 도착한 날 내가 먹은 것도 마트에서 사온 감자였다. 나는 다른 음식들과 함께 감자를 몇 알 사서 식탁에 차려놓았다.

앞서 나는 감자가 주먹을 쥔 자세로 사람을 대한다는 글을 소개했다. 감자가 그런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감정이입 되는 것은 군데군데 움푹하게 들어간 부분 때문일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주먹을 쥘 때 각이 져서 올라오는 부분 사이에 생기는 오목한 부분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은 그 부분이 감자가 땅 속에서 자랄 때 돌들에게 자리를 양보한 이라고 한다. 그 부분에 대해 어떤 이는 이렇게 적었다. “그곳은 감자가 세상과 만난 흔적이다. 그 홈에 몸 맞췄을 돌멩이의 기억을 감자는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 그 어떤 자리도 빌려서 살아가는 것일 뿐 자신의 소유가 없다는 것을 감자의 몸은 어두운 땅속에서 깨달은 것이다.” 감자는 주먹을 쥐고 있지만 한없이 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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