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우수리스크
“마르크스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그렇게 묻고 나서 나는 빨리 답을 말했다. “돈 가는 데 마음 간다.” 내 말을 들은 그 분은 깔깔 웃으면서 “정말, 마르크스가 그렇게 말한 거 맞아?”하고 물었다. “예, 맞아요. 직역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의역을 하면 대강 그런 뜻이에요.”
옛날이야기가 떠올랐던 것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돈이라고 하는 것이 마음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데 어느 정도 생각이 이르러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자본에 제대로 포획된 것이다. 오십이 넘은 어느 여자 분의 말씀이 그런 생각에 힘을 싫었다. “그 사람의 카드로 함께 쇼핑을 해봐, 그럼 없던 사랑도 생겨.”, “가난이 창문으로 들어오잖아. 그럼 사랑이 문을 열고 나가게 되어 있어.” 그리고 나는 그날 아침 한 영화에서 노인의 이런 대사를 들었다. “사랑, 그건 있으면 좋은 거고 돈은 없으면 죽어.” 돈이 없으면서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은 힘든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다. “사랑은 가끔 돈을 이길 수 있지만 계속해서 이길 순 없어.”
내가 바텐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게 흥미로웠는지 몇몇의 친구들이 끼어들었다. 우리는 의례적으로 어디서 왔느냐 몇 살이냐, 뭐 그런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바텐더의 여자 친구는 무척 미인이었다. 18살. 대학생이라고 했다. 러시아 남자들은 군복무 기간이 1년이라고 했다. 뛰어난 외모를 가진 두 사람에게 물었다. “몇 살에 결혼할 건가요?”, “24살 정도요.” 남자가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 “한국인들은 주로 몇 살에 결혼해요?” 서른이 넘어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자 무척 놀라면서 “왜”냐고 또 물었다. 나는 한국에서 보통의 남자가 결혼하기 위해 드는 비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환율계산기로 그것을 계산해주었다.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집도 사야하고 차도 사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려며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러시아 남자들은 보통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보스가 말했다. “집은 렌트하면 되고 함께 지불하면 돼요. 차도 그렇고.” “하지만.” 보스가 머릿속으로 단어를 고르는 것이 보였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여자들이 부자를 좋아한다고 쳐요. 하지만 러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에요.” 나는 그의 말에 한잔 마셨다.
한국 남자들이 결혼이 늦는 것은 돈 때문이기도 하다고 다시 한 번 말하자, 바텐더가 말했다. “당신은 가난할 수 있지만 사랑이 없다는 것은 다른 문제예요.” 그의 말에도 한잔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보통 죽을 때까지 결혼을 몇 번 하나요? 이혼이 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고 이런 저런 농담이 오갈 때 나도 농담 삼아 던졌다. 책에서 나는 그렇게 읽었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한 번쯤 결혼을 한다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에서는 그게 조금 부끄러운 일이라서 서로 미워하게 되어도 웬만큼 참고 살기도 해요.” 보스가 말했다. “한국은 작고 러시아는 넓어요. 블라디보스톡에서 결혼을 하고 이혼한 다음 모스크바에 가서 다시 결혼해도 알아볼 사람이 없죠.”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는 7시간의 시차가 있고 그쪽과 그쪽이 통화를 할 땐 시내 요금이 아니라 국제요금이라고 들었다. 우리는 웃으면서 또 한 잔 했다. 이어서 후카맨이 말했다. 후카맨은 술집에서 이슬라식 물담배를 파는 사람을 가리킨다. “사람들마다 다 달라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죠”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번역에 대한 오해가 훨씬 깊이 있는 의미를 만드는 것 같았다. 그 오해에 대해서도 한 잔 마셨다.
모든 산책이 끝나고 마지막 산책이 시작되기 전 나는 그 바를 찾아 갔다. 그들은 내게 후카를 피게 했고 보드카 마시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작은 잔에 따른 보드카를 홀짝홀짝 여러 번 나눠 마시는 것을 보고 ‘보스’는 “넌, 여자 같구나. 남자는 그렇게 마시는 게 아냐?”하고 보드카 마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보드카는 이렇게 마시는 거라고 한다.
우선 보드카가 담긴 작은 잔을 앞에 두고 한숨을 크게 내 뱉는다. 잔을 들고 원샷, 잔을 내려 놓고 다시 한 번 숨을 내 뱉는다. 그리고 소금에 전 안주를 집어 먹는다. 나는 여러 종류의 안주를 차려 놓고 그것을 먹었는데 소금에 전 토마토를 하나 입에 넣은 후 다시는 안주들에 손을 대지 않았다.
마지막 산책은 술집에서 호텔까지였다. 거기 있는 동안 마지막 산책길은 같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 제이가 우수리스크를 가리키며 “그곳은 어땠어?”하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원하면 그곳 사람들은 모두 내 친구가 되어 주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