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아일랜드' 를 산책하다

러시아 우수리스크

by 카렌

제냐가 내게 성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김’이라고 했다. 그러자 돌에 새겨진 많은 글자들 중에 일부를 손으로 가리켰다. 나와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김’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은 많았다. 러시아의 혁명에 참가한 고려인들이었다. 러시아의 혁명이 조선의 독립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들은 볼셰비키의 혁명에 참가했다. 그들의 붉은 군대와 함께 제정 러시아의 백군과 전투를 벌였다. 그런 전투 중의 하나를 나는 기억한다. ‘이르쿠츠크’라는 도시의 중심으로 향한 다리가 하나 있었다. 그 다리를 향해 엄청난 규모의 백군이 진군하자 붉은 군대는 후퇴를 결심한다. 마지막까지 그 다리를 지켰던 이는 남만춘이 지휘한 25명의 고려인이었다. 25명의 고려인은 모두 전사했다. 혁명에 성공한 옛 소련은 이들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도시마다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광장을 만들어 영원히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했다.

‘영원의 불꽃 광장’ 옆에 나무로 가려진 구멍이 하나 있었다. ‘그린 아일랜드’로 통하는 입구라고 했다. ‘그린 아일랜드’는 여기 말로 ‘질리온카’였다. 나는 두 번이나 이곳에 왔지만 그런 입구가 있는 줄 몰랐다.

제냐와 알리나가 앞장 서 걸었고 나는 뒤를 따랐다. 오래된 공원이라고 했다. 원래는 사람들이 피크닉을 즐기는 곳이었는데 ‘파크 도라’가 생기고 난 후 사람들은 모두 그곳으로 가버렸다고 했다. 곳곳에 오래된 놀이 기구들이 붉게 녹슨 채 방치되어 있었다.

제냐와 알리나는 포장되지 않은 길을 잘 걸었다. 웅덩이가 있으면 돌아서 갈 만한데 그러지 않았다. 사람을 오래도록 발견하지 못했는데 깊은 숲에 놓인 벤치 위에 한 커플이 등을 보이고 앉아 있었다. 그들을 지나자 다리가 나왔다. 녹슨 다리에 무수히 녹슨 열쇠들이 걸려 있었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사랑의 징표로 열쇠를 걸기 시작한 걸까. 나는 잠자코 제냐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랑에 빠지면 여기 와서 자물쇠를 채워요.”

제냐는 열쇠 위에 적힌 커플들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만약 헤어지면 어떻게 하나요. 와서 이 자물쇠를 푸나요?”

“아니요. 자물쇠를 채우고 나서 열쇠는 저 강에 던져 버려요. 열쇠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자물쇠를 풀 수가 없죠. 헤어지면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리면 돼요.”

울창한 숲길을 지나 우리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 언덕에서 호수가 내려다 보였다. 팬티만 입은 남자가 걷고 있는 게 보였다.

“사람들은 여기서 수영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물이 더러워서 그런 사람은 없어요.”


둑을 따라 우리는 걸었다. 나는 이렇게 산책이 길어질 줄 몰랐다. 제냐를 만난 것은 고려인 문화센터 근처였다. 내가 그곳에 다시 간 것은 고려인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처음 고려인 문화센터를 찾는 길에 그분을 만났는데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온 분이었다. 뭐든 물어본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고 찾아갔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앉아 있던 벤치에 앉아서 옆에 있는 구멍가게를 쳐다보았다. 가게는 두 개였는데 오른쪽에서 한 여자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그 가게로 갔다. 제냐와 다른 여자가 있었다. 제냐는 아이스크림을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저는 고려인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후 다시 가서 껌 같은 것을 샀다. 그리고 제냐에게 이 도시에서 내가 본 것들을 말하며 더 볼 게 있냐고 물었다. 제냐는 한국말이 그렇게 유창하지는 않았다. 내가 콩나물을 파는 아저씨는 언제 오냐고 묻자 오후 6시쯤에나 온다고 했다. 오후 6시부터 장사라니 해가 오래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벤치에 앉아 여섯 개의 꿈을 모두 씹고 있는데 제냐고 내게로 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한 군데 남아 있긴 한데 오래된 공원이에요.”

“혹시 저와 함께 가겠다는 말씀인가요?”

“예. 친구도 함께 갈 거예요.”

우리는 분수가 솟아오르는 극장 앞에서 알리나를 기다렸다. 알리나는 러시아인이었다.

우리는 오래된 숲길을 길게 걸어가면서 몇 군데의 낡은 아파트를 지났다. 화단에 핀 꽃들은 선명하고 젊어서 아파트와 대조적이었다. 어렸을 때 내가 살았던 아파트가 그대로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졌고 거기 있는 아이와 부모들은 모두 내 어린 시절의 그분들 같았다. 다만 얼굴과 피부색이 달랐을 뿐이다.

산책은 두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왜 이름이 그린 아일랜드인지 알 것 같았다.

러시아인들이 대개 책을 좋아할 것이라는 것은 내 편견이었다. 나는 러시아를 소개하는 책에서 러시아인들은 그렇다는 문장을 읽었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에게 호감이 갔다. 실제로 그런 분을 만나기도 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우수리스크로 올 때 내 옆에 앉은 할아버지는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보고 있는 책은 ‘몽테크리스토 백작’이었다. 나는 그게 신기하고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건 그 할아버지의 개성에 불과했다. 모든 인간들에게는 각자의 개성이 있는 것인데 누군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한다고 말한 것으로 그들 사람 모두를 그런 사람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정말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두 사람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자신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누구나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나, 푸쉬킨을 읽지 않아?” 이렇게 물었을 때 그녀들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 같았다. “질색이에요.”

산책을 마치고 우리는 어떤 식당에 들어가 늦은 저녁을 먹었다. 오후 8시가 되었는데도 해가지지 않았다. 밥을 먹고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직원이 퇴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밖으로 나왔는데 여전히 조금도 어둡지 않았다. 우수리스크가 이정도인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야는 무척 대단할 것 같았다. 새벽 두시의 거리 사진에는 대낮 같은데도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내 생각인데 우수리스크를 방문한 관광객들은 ‘그린 아일랜드’를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도라 파크’에서 발해시대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거북이’를 보고 러시아의 공원은 이정도구나 하고 느껴볼 것이다. ‘그린 아일랜드’를 경험한다고 해도 그렇게 좋아할지는 모르겠다. 그냥 오래된 숲길이다. 오래 걷다 보면 과거의 어떤 곳에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렇다. 우리는 중앙광장에서 헤어졌다. 마지막 인사로 제냐는 “이 도시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p.s 혹시 우수리스크에서 시간이 좀 있는 여행자라면 ‘영원의 불꽃 광장’ 옆에 나무로 가려진 구멍 속으로 한 번 걸어 들어가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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