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우수리스크
우수리스크에 다녀왔다. 블라디보스톡으로 돌아가기 위해 역에 들어갔을 때 여자 역무원 셋이 내게 짐을 풀어보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일이 끝난 후 블라디보스톡 기차를 타려한다고 말했더니 대합실에 가서 앉아 있으라고 했다.
대합실에는 미장원이 있고 짐 보관소가 있고 이콘을 파는 곳이 있었다. 미장원에는 손님이 없었고, 짐 보관소의 문은 닫혀 있었고 성상을 파는 곳엔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한산한 아침이었다.
나는 역무원에게 다가가 광장에 서 있는 창문 밖의 저 동상이 스탈린이냐고 물었다. 역무원은 레닌이라고 대답했다. 사진을 찍겠냐고 하기에 나는 그러고 싶다고 했다. 그녀들은 나를 내보내주었고 나와 레닌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화장실로 가면서 나는 다시 동상을 지나쳐야했다. 레닌은 내가 아는 그 터키 시인의 정신적 스승이었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그의 시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적혀 있다.
그의 시는 50개 어로 번역되었지만 조국 터키에서는 1965년까지 금서. 장기수로 복역하면서 한 평 감옥에서 쓴 시. 그의 유해는 여전히 모스크바에 남아 있다. 그의 죄명은 공산주의자. 1956년 백석이 번역하면서 평양에서 출간. 우리 모두는 아직 최상의 날들을 살지 않았다.
그를 생각하자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소름을 내가 느끼고 있으리라는 것을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 웃기기도 했다.
대합실로 돌아와 나는 머릿속에 있는 그의 시를 수첩에 적었다 .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기차가 도착하자 역무원들이 나를 불렀다.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블라디보스톡까지는 두 시간. 나는 기차에서 나짐 히크메트의 시를 더 잘 암송하기 위해 노력했다.
블라디보스톡에 돌아와 제이를 만났다. 제이는 밤 9시에 공항에 도착한 뒤 11시쯤 되어 내가 있는 호텔로 왔다. 나는 낮에 잠깐 나짐 히크메트를 생각한 일을 말해주었다. “나도 예전에는 스승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선생님들을 막 존경하고 그랬지. 그런데 그 선생님들도 그냥 사람이었더라고.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는 것 같아. 스승이 필요한 시절.” 그리고 말을 더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한 평생 자신이 지켜온 신념이나 사상이 시간이 지나서 옳지 않았다거나 경쟁하고 있던 것에 패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한 평생 매달려 왔던 인생은 뭐였냐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나짐 히크메트는 소련이 붕괴되고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국가와의 경쟁에서 패배한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잖아. 만일 봤다면 그가 평생 매달린 사상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니 몸이 싸해지더라고.”
나는 제이에게 나짐 히크메트의 시를 낭송해주었다. 그걸 들은 제이는 자신도 외울 거라고 그걸 적어 달라고 했다. 나는 노트를 보여주었고 제이는 그걸 베껴 적다가 시의 한 구절을 패러디해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아직 만나지 않은 여자?”
우리는 같이 웃었다.
2009년 나짐 히크메트는 터키 시민권을 회복한다. 터키 정부로부터 쫓겨난 지 58년만의 일이었다. 오르한 파묵의 노력과 유럽 연합에 가입하고 싶어 한 터키 정부의 바람이 여러모로 기여를 한 것 같았다. 나짐 히크메트의 시민권 회복을 발표하면서 터키 정부는 그의 유해를 가져오는 일만은 유족들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