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의 책장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by 카렌

내가 특이한 것에 잘 끌린다고 제이가 말했다. 그러나 동행에 불만은 없어 보였다. 조금 유별난 것은 제이나 나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사치품이 필수품인 것처럼 느껴지면서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었대.” 이런 것을 대화 소재로 활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얼마 전 y군과 주고 받은 메일이 떠올랐다. y군은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를 지나 ‘시굴다’에 도착했다고 한다.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만난 여행자들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아무래도 여기는 가난한 영혼의 여행자는 없고 부유한 영혼의 여행자만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부족한 마음을 하나 둘 채워가는 여행자들은 아닌 것 같아요.” 나는 웃으면서 이렇게 적었다. “사실 영혼이라는 단어는 일상어가 아니다. 책에서만 보는 단어라서 우리처럼 영혼 어쩌고 하면 사람들이 싫어할 수도 있다. 나는 요즘 이런 문장을 자주 생각한다. 우리는 오래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그러려고 태어난 것 같다.”

우리가 가는 곳은 공원이었고 정확하게 말하면 공원 안에 있는 책장이었다. 지난 밤 나는 한 남자로부터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저도 처음엔 좀 놀랐어요. 공원에 책장이 있다니! 그런데 그 책장이 집에 있는 그런 책장이었어요. 거기서 사람들이 책을 꺼내 보고 있었어요. 자기 집에서 그러는 것처럼 말이에요.” 나는 공원에 책장이 있는 것이 놀랍고 그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아 직접 가보기로 했다. 그 남자에게 지도를 펼쳐놓고 그 책장이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몇 군데를 찍으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 여기 여기서 그걸 보았는데 웬만한 공원에는 다 있는 것 같았어요.”

오늘 아침 우리는 가까운 곳 한 곳을 정한 후 출발했다. 가는 길에 제이는 이야기를 몇 개 들려주었다. 그 중에 하나는 이런 것이다.

“뉴기니에서는 돼지가 재산인데 키우는 돼지의 코를 자른대. 그러면 냄새를 맡지 못하고 먹이를 잘 구할 수 없어서 도망을 못간대. 어떤 사람은 눈을 파기도 하는데 그런 돼지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대. 마치 우리 같지 않아?” 나는 제이의 말씀에 맞장구를 치면서 말했다. “심지어 사람에게 고마워하는 돼지들도 있을 거야. 먹을 것을 주니까.” “딱 죽지 않을 만큼 말이지. 우리 회사처럼” 제이가 또 맞장구를 쳤다. “그 지경이 되면 돼지는 자기가 무엇을 빼앗겼는지도 모를 거야.”

진짜 공원에는 책장이 있었다. 가운데 있지 않았지만 변두리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변두리와 가운데의 중간쯤, 공원에 들어선 사람의 눈에는 어디서라도 잘 띌 수 있는 그런 자리였다. 책장은 나무로 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집에서 볼 수 있는 클래식한 느낌의 책장이었다. 중년의 여자가 책을 고르고 있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그 여자가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자가 떠나기도 전에 반대쪽에 한 남자가 나타나 책을 골랐다. 둘 다 진지했다. 둘 중 누군가 떠나자 곧 다른 사람이 나타나 그 자리를 메웠다. 결국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사진을 찍고 나자 곧 다른 사람이 책을 고르기 위해 나타났다. 인상적인 것은 노숙자였다. 그 남자는 검정색 비닐 주머니에 모든 물건을 담고 있었다. 그의 곁에서 나도 책을 골랐다. 무슨 책인지 몰라서 꺼냈다 펼치고 덮었다 했다. 잠깐 눈으로 살펴보니 물 한통과 누런 수건이 비닐 주머니 속의 전부였다. 오래 씻지 않은 냄새가 코를 막았다. 벤치에 앉아 그 남자를 쳐다보는데 그 남자도 다른 벤치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노숙자라니 한국에서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이었다. 나는 다시 책장으로 다가가 냄새를 맡아 보고 두드려도 보았다. 유리문이었는데 비가 오면 누가 닫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이 책장을 관리하는 공원의 일꾼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날이 어두워지거나 비가오거나 눈이 오면 열려져 있는 유리문을 닫아주는 것으로 한 생을 사는 사람. 내 버켓리스트에 올리기로 했다. 그리고 언젠가 이런 책장을 어느 공원에 놓아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책을 훔쳐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다시 벤치에 앉아 제이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안 될 걸. 공원에 놓는 즉시 폐지 줍는 분들이 다 가져갈 거야. 그분들이 얼마나 부지런한 분들인데.” 이어서 제이가 말했다. “여행은 책을 읽기 위해 오나봐. 이 책이 그렇게 안 읽혔는데 여기선 읽히네.” ‘사피엔스’였다.

“또 뭐 내게 들려줄 이야기 없어?” 우리는 한나절을 책장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있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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