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에서 본 것 : 수하노바의 집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by 카렌

이제 블라디보스토크에는 100년 이상 된 집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귀하게 남아 있는 집 중 하나는 ‘수하노바의 집’ 이다. 수하노바는 블라디보스토크의 관리였다. 그가 남긴 사진집에는 고려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사진들도 있었다. 한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서 지게를 지고 살았다. 그 지게에 물건을 실어 배로 옮기기도 하고 배에서 내리기도 했다. 그들 중 일부는 독립운동가였다. 우리나라에서 독립운동이 어려워지자 블라디보스토크로 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국적자였다. 차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제안은 솔깃했는지 모른다. “독일군과 싸울 건데 우리 군대에 입대해서 살아서 돌아온다면 시민권을 줄게.”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다. 소련에서는 이들이 필요했다. 이들은 전투 경험이 있는 군인들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2차 대전.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 소련은 무방비 상태였다. 상호불가침 조약을 믿었는데 한 방 먹은 것이다. 처음에 많은 소련군들이 독일군 포로수용소로 끌려 갔다. 거기에 고려인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독일 학자의 요구에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고향에서 부르는 노래를 녹음했다. 아리랑이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그걸 구해서 틀어보았다. 나도 들었다. 가사는 내가 아는 것과 달랐지만 음도 언어도 아리랑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나중에 독일 군복을 입고 노르망디에서 연합군과 싸운다.

수하노바는 여행가이기도 했다. 그의 수집품 중에는 한국 물건도 있었고 일본 물건도 있었다. 악기도 있었고 화첩도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가 많은 엽서를 썼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많은 엽서를 받기도 했다. 그 엽서들은 병풍 같은 것에 장식처럼 붙어 있었는데 그런 것도 마음에 들었다.

방마다 작은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오래된 재봉틀도 보였다. 그가 앉았던 책상. 그 모든 것을 만져 볼 수 있는 박물관이라는 것이 조금은 특별했다. 재봉틀 앞에 서 있을 때 홍콩에서 왔다는 여자가 피아노를 연주했다. 어떤 방에는 축음기가 있었는데 여자가 다가와 엘피판을 놓고 축음기를 돌렸다. 잡음이 많이 섞이긴 했지만 음악이라 할 수 있는 소리들이 저 멀리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아들 방에는 천체망원경이 있었다. 그에게는 한 명의 딸과 두 명의 아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아들들은 체스를 좋아했고 책을 많이 읽었으며 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천체망원경이 갖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땐 돈이 없어서 부모님이 사주지 못했고, 집안 사정을 아는 나로선 떼를 쓸 수도 없었다. 남의 눈치 보며 욕망을 억누르는 것은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제 나에게 천체망원경이 주어진다고 해도 나는 밤마다 그걸 들여다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땐 시골 집 옥상에서도 별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사람 사는 곳에서는 그 어떤 망원경으로도 별을 관찰할 수가 없다. 지금 천체망원경을 산다면 먼지만 쌓일게 뻔하다. 천체망원경이 놓여 있던 자리. 100년 전에 수하노바의 아들은 천체망원경의 작은 구멍을 통해 멀리 있는 별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가 어디선가 나타나 그 구멍 속을 들여다본다고 해도 선명한 별을 찾기는 힘들다. 블라디보스토크에도 이제는 인공의 빛이 많아졌다. 꿈을 미룬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중국인들을 가득 태운 낡고 오래된 버스를 보았다. 버스의 나이는 족히 100년은 되어 보였다. 오래된 때를 걷어 내는데 100년의 목욕이 다 소용없을 것처럼 보였다. 100년 동안 한 번도 옷을 갈아 입지 않은 사람의 표정으로 중국인들은 화려한 블라디보스토크의 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꼬마 아이에서부터 노인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타고 있었다. 몇 팀의 가족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향해 두 손을 흔들었다. 천천히 그들은 내 앞을 지나가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저런 버스가 언덕을 올라갈 수 있을까. 이만 저만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는 버스였다. 아무래도 나는 그 중국인들이 그 버스를 타고 이곳으로 넘어 온 것 같았다. 저렴한 패키지여행에 속아서 말이다. 화려한 파티에 참석했는데 입고 온 옷이 파자마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좋은 버스들이 다른 손님들을 싣고 달리고 있었다. 좋은 버스에서 보나 낡은 버스에서 보나 풍경은 다를 바 없을 거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그 버스와 다른 버스에는 왠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타고 있을 것 같았다. 인종이 아니라 계급 같은 것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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