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주간의 일정으로 미얀마 배낭여행을 떠난 게 2019년 2월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소식이 전해졌다. 지금은 거의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는 소식이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미얀마 사람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내가 만났던 그곳의 사람들이 여전히 잘 지내는지 걱정이 되었다. 남의 나라 사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 잘 지내기를 기도할 수는 있다. 시선을 마주치면 수줍게 웃던 그 사람들이 아무 일 없이 자신들의 일상을 잘 이끌어가기를 바라면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서울에 있을 때 한 지인으로부터 위빠사나 명상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 얘기를 들었다. 사람의 마음이 거울이라면 내 마음은 평면거울이 아니라 울퉁불퉁 불투명한 거울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진다는 말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마침 양곤에는 세계적인 위빠사나 명상 센터가 있다. 바로 마하시 명상센터다. 온 김에 명상센터에 가서 명상체험을 하고 싶었다. 여행 일정은 일주일 정도 연기할 수 있다. 은퇴자의 여유, 자유 배낭여행의 장점이 바로 이런 것이다.
기대를 가지고 명상센터에 들어가 수련장을 찾았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노스님이 우리를 안내한다. 최소 한 달 이상의 장기체험만 가능하다는 얘기에 며칠 머물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노스님으로부터 명상에 관한 기본 강의와 자세에 대해 반나절 동안 강의를 듣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대신 새벽의 탁발 행렬을 따라가려고 다음날 새벽 4시에 그곳에 도착했다. 아침 공양을 준비하는 주방에 불이 켜져 있다. 양배추 다듬는 것을 거들며 아침이 열리길 기다렸다.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걸어와 주방 입구의 북을 두드리자, 기다렸다는 듯 각 숙소의 불이 일제히 켜진다. 곧이어 주황빛 가사를 차려입은 노스님들이 맨 먼저 식당으로 향한다. 동자스님, 분홍 가사를 입은 여자스님, 기도하기 편한 차림을 한 장기 투숙 수행자들이 뒤를 이어 어둑한 수련원에 긴 줄이 만들어졌다. 맨 뒤에 우리도 섰다.
아침 공양 행렬.
앉은뱅이 식탁에 멀건 흰 죽과 쌀국수, 고명 몇 가지, 바나나, 차가 놓여 있다. 한 상에 네다섯 명씩 앉아 묵언 수행하듯 밥을 먹는다. 북을 울린 지 30분 만에 아침 공양이 모두 끝났다. 이따가 오전 10시에 먹는 점심이 하루 중 마지막 식사라고 한다. 수행을 하려면 먹을 것에 대한 욕심을 제일 먼저 내려놓아야겠구나,라고 혼자 생각한다.
그새 탁발 나갈 스님들은 준비가 끝났다. 몇십 명이 줄을 지어 센터를 나선다. 붉은 가사가 어둠을 밝히며 골목을 누빈다.
맨 처음 공양주를 만났다. 황금색 팔찌를 낀 풍채 좋은 맨발의 중년부부다. 커다란 알루미늄 통에 담긴 밥을 정성스레 스님들의 발우(탁발 그릇)에 한 주걱씩 담으면서 연신 절을 한다.
주로 쌀밥을 공양하고, 물이나 차도 공양한다. 젊은 스님들에게 사탕이나 동전을 공양하는 사람도 있다. 대로변을 지나 골목길로 접어들수록 공양주의 그릇은 작아지고 기도는 더 간절해 보인다.
공양하는 모습
공양주 열댓 명을 거치는 동안 발우에 담긴 밥이 불어난다. 어린 동자스님들이 발우를 한 손으로 받쳤다가 두 손으로 들었다가 하며 무게를 감당하려 애쓴다. 자세히 보니 노스님들 발우는 빈 공간이 많고 체격이 좋은 어떤 젊은 스님은 뚜껑이 잘 안 닫힐 정도다. 나이 어린 동자스님들 발우도 거의 찼다. 공양주들이 스님들 연배나 체력을 보고 적절히 밥을 나눈다는 것을 알겠다.
샛길로 들어가니 도시 빈민의 삶이 한눈에 보인다. 엉성하게 지은 집들은 지금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듯하고 남루한 빨래는 창을 가린다. 길과 마당의 구분이 모호하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쌀밥 대신 문 앞에 서서 두 손을 맞잡고 공손히 절을 하는 것으로 공양을 대신한다. 낡은 집, 해진 옷, 낡고 닳은 살림살이 틈에서 어린아이 웃음소리가 들린다. 창문으로 고개를 내미는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하다. 산만한 골목에 밝은 웃음소리가 기분 좋게 흩어진다. 어지러운 샛길이 갑자기 툭 터져 반반한 골목길이 나오더니 곧바로 대로로 이어진다. 마하시 명상센터가 저만큼 보인다.
탁발 행렬
오늘 아침 탁발은 끝났다.
각자 모은 밥을 커다란 양철통에 붓고 스님들은 수행처로 돌아간다. 후미에서 함께 걷던 어린 스님이 해맑게 웃으며 목례하고 돌아선다. 집안 사정이 안 좋아서 식구 하나 줄이려고 자녀를 수행 시설에 의탁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어린 나이에 스스로 이곳에 왔다기보다 어떤 사연이 있어 이곳에서 지낼 거라 지레짐작하니 어떤 연민 같은 게 느껴진다. 아까 사탕 공양 때 표정을 보니까 영락없는 어린 개구쟁이였었다.
내 눈에 부실해 보이는 식사가 한참 자랄 어린 소년의 발육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까. 어제 원내를 둘러보니 특별한 운동시설도 안 보였는데 성장기에 필요한 신체적 활동을 어떻게 해 나가는지도 궁금해졌다. 언젠가 기회가 와서 수련을 하게 된다면 이런 오지랖은 생기지 않겠지.
어린 스님에게 ‘성불하십시오’가 아니라, '이곳의 생활이 만족한 날들이 되십시오'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센터 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