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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창고 Sep 17. 2021

야채 좀 가져가도 될까요


   인레에서 출발한 로컬버스는 6시 20분쯤 되어 휴게소에 들렀다. 운전사가 7시에 출발한다며 시계를 가르친다. 밥 먹을 시간이 충분하겠군. 우리는 열서너 시간 버스로 이동한 뒤에 낼 아침 띠보에 도착할 것이다.

 띠보에서 몇 날 머물면서 샨족 전통마을을 둘러보고 파인애플 농장과 수박밭, 오래된 사원이 있는 시골 마을을 걸어서 두루 돌아볼 것이다. 그런 다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두 번째로 높다는 곡테일 철교를 지나는 기차를 타고 휴양도시 핀우린에 갈 계획이다. 반군이 활동하는 북쪽 지역을 빼고 양곤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미얀마를 한 바퀴 돌고 있는 중이다.


  시골 마을 작은 휴게소의 메뉴는 단순했다. 퍼슬퍼슬한 밥과 이름을 알 수 없는 생선 튀김, 꽃이 핀 유채를 기름에 볶은 나물과 돼지고기 조림 등이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야채를 좋아하는 나는 여행 중 야채에 대한 은근한 갈증이 있어 싱싱한 야채만 보면 아낌없이 먹는다. 그런데 이날 갓 따온 신선함이 살아있는 생야채 모둠이 나왔다. 양상추에 몇 가지 더해진 야채는 몇 번 집으니 금방 바닥이다. 야채를 더 먹고 싶은데 또 한 상을 주문해야 하나?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1인분이 2천 원 미만이니 나머지를 빼고 야채만 달라고 할까? 서로 어쩌지? 하는 표정으로 머뭇거리는데 밥을 먹고 일어서는 현지인의 식탁에 손도 대지 않는 야채가 보란 듯이 놓였다. 염치 불고하고 야채를 가져가도 되는지 물었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덤으로 얻은 야채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건너편에 있던 중년 여자가 자기 야채를 가리킨다. 남았으니 가져가라는 뜻이다. 어쩌다 보니 우리 두 사람은 그날 네 사람분의 야채를 추가로 먹었다. 야채로 배를 채운 셈이다.


  밥을 먹고 밖으로 나오자 같은 차를 탄 현지인들이 아는 체를 한다. 그 식당의 유일한 외국인이 야채를 구걸하는 것이 재미 또는 친근감을 준 것 같다. 어떤 현지인은 손에 들고 있던 먹거리를 나눠주기도 한다.

 이걸 좋아해 말아? 현지인을 배제한 여행의 쓸모란 건조하기 짝이 없을 것이니 이 친절을 기쁘게 받아들이자. 배낭에 든 초콜릿을 꺼내 하나씩 나눠준다.  


 여행 가이드지에 소개된 별 다섯 개짜리 이름난 맛집의 소문난 음식보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로컬 식당에서 입맛을 사로잡는 음식을 발견했을 때의 소소한 기쁨이 더 기억에 남았던 것처럼 가끔 그날 호의를 보내던 순박한 눈빛들이 떠올라 혼자 미소 짓곤 한다.  

  나는 모델하우스처럼 잘 꾸며진 곳보다 꾸밈없는 뒷골목의 풍경, 현지 사람들의 생생한 생활을 들여다보는 여행이 좋다. 정해진 일정대로 움직이는 여행은 앙꼬 없는 단팥빵을 먹는 것처럼 어딘가 심심하다. 그 심심함이 때로는 매력적일 때도 있지만 나는 약간 불완전하고 미완성된 일정을 채워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여행에서 내가 얻는 것은 타인의 삶에 함부로 잣대를 들이대며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며 적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다. 알고 보면 모두들 참 열심히 잘 살고 있었다. 적당히 행복하고 적절히 불평하면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는 그들은 어디에서나 만나고 어디에나 있는 바로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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