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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창고 Aug 21. 2021

껄로 가는 길

미얀마 배낭여행

  미얀마의 옛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 양곤의 버스 터미널은 상상 이상으로 넓고 복잡했다. 국토 면적이 한반도의 약 3배나 되는 미얀마의 주요 이동 수단은 버스이다. 철도가 발달되지 않고 국내선 비행기도 원활하지 않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넓은 이 나라의 대중교통은 시내버스와 고속버스, 시외버스가 주로 담당한다. 웬만한 대도시에는 있는 지하철 없다. 택시와, 툭툭이라 불리는 인력거 택시, 오토바이 등이 사람들의 주요 이동 수단이다.


   우리는 지금 중부 샨 주의 작은 마을 껄로로 가야 한다. 택시는 광대한 버스터미널을 몇 바퀴 돈 뒤에야 겨우 껄로로 가는 터미널 입구에 내려 주었다. 미얀마는 버스 회사마다 각자 다른 터미널을 가지고 있다. 그 터미널들이 한 장소에 다닥다닥 모여 있어서 여간 복잡한 게 아니었다.

  떠나려는 자와 떠나온 자, 그들을 위한 온갖 길거리 장사꾼, 오고 가는 택시와 오토바이와 툭툭이들이 서로의 목적으로 부단히 움직이는 그곳은 생명이 꿈틀대는 거대한 시장터 같았다.

  자국의 언어로 도배한 버스, 이 나라의 말을 읽을 수가 없어서 불안한 마음으로 영어가 좀 통하는 승무원에게 우리의 목적지를 재차 삼차 확인한 후 지쳐버린 몸을 버스에 싣는다.


  자욱한 흙먼지를 날리며 버스가 산굽이를 돌 때마다 창밖의 불빛은 점점 사라지고 희부옇게 뜬 달빛이 우리를 쫓는다. 길은 울퉁불퉁 파여 자주 요동을 치고 성호를 긋는 친구의 손은 더 빨리 오르내린다. 그러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누가 어깨를 친다. 물과 간식을 나눠주던 보조 기사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와 함께 탔던 젊은 서양 여성 두세 명이 배낭을 챙기며 내릴 준비를 한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다. 7시에 도착한다고 들었는데 벌써?


  앞자리의 미얀마 학생에게 여기가 어딘지 묻는다.' 껄로'. '너넨 왜 안 내려?'. '우린 쉐낭에 가니까'. 아하, 종착지라고 생각한 껄로가 경유지라는 걸 방금 알았다. 껄로행 표를 사는데 종착지 기준으로 도착시간을 말해주하마터면 낭패를 볼 뻔했다. 글자를 모르니 눈뜬 봉사가 따로 없다. 문맹자의 고통이 피부로 확 느껴진다.  


  넓은 도로 한가운데 우리를 떨군 버스가 떠나자 어둠이 몰려들었다. 뜨문뜨문 있는 가로등의 불빛은 옛날 시골집 화장실에 있던 전구처럼 작고 희미하다.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저리 가라 자식, 나 만만한 사람 아니야. 괜히 어둠 속에서 군기를 잡는다. 개와 씨름할 사이가 없다. 숙소를 찾아야 한다.

  정류장에서 800미터, 휴대폰의 지도를 열어 목표지점을 찍는다. 짐이 있고 밤이니 택시를 타야겠지. 버스 도착을 기다린 듯한 택시기사가 담뱃불을 끄며 흥정을 해온다. 5천 짯. 뭐야. 기본요금이면 충분할 텐데. 2천 짯을 부르니 4천 짯이라 한다. 바가지를 씌우는 게 괘씸해 호기롭게 커다란 배낭을 둘러맨다. 몇 발짝 가면 3천 짯으로 잡으러 오겠지. 어라, 그는 다시 담배를 물며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배신당한 이 기분은 뭐지? 4천 짯이라야 우리 돈 4천 원 가량, 그깟 천 원 아끼려고 누가 치사했는지 아리송해하면서 언덕배기 호텔까지 걸었다.


  미리 연락을 하였거니와 이 시간에 차가 온다는 것을 그들도 알아서 졸린 눈을 비비고 나온 호텔 직원은 의외로 상냥하다. 호텔 로비에는 삼단 요와 이불까지 한쪽에 쌓여있다. 빈방이 날 때까지 쉬라며 바닥에 자리를 펴준다.

  좁은 좌석에 구겨지고, 너덜대던 도로에 흔들리던 몸을 펴자 저절로 눈이 감긴다. 새들도 제 집을 찾는 저녁 시간에 나는 무엇을 위해 이 먼 타국에서 헤매는가. 누군가 등이라도 떠밀었다면 참 서글펐겠다는 어제의 생각은 멀리멀리 도망가 버린다. 상거지 꼴로 꿀맛 같은 휴식에 들어간다. 아침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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