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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창고 Aug 30. 2021

패러글라이딩

처음이자 마지막인 나의 공중 유영

포카라의 사랑 고트는 페와 호 북쪽 해발 약 1600 미터 지점에 있다. 이곳은 세계 4대 패러글라이딩에 속한다는 포카라 패러글라이딩의 출발점이다. 올드 바자르에서 사랑 고트를 향하는 원래의 길 대신 호수를 반쯤 돌아 다랑이 논 사이의 마을길과 마사토가 흘러내리는 관목 숲을 오프로드 한 끝에 그곳에 도착했다.


잡초가 깔린 언덕은 시장터였다. 형형색색의 캐노피가 꽃처럼 펼쳐진 축제의 장소다. 캐노피를 활짝 펼친 채 이륙하고, 이륙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주한 소리 없는 경연장이다. 누가 더 높이 나는지 겨루듯 앞다투어 두둥실 올라간다. 어지러운 하늘을 보자 살짝 긴장이 된다. 잘 날 수 있을까?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조종사가 출발할 때 멈칫거리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준다.

‘달려, 달려, 하나, 둘, 셋’하는 어눌한 그의 말에 뒤편에 있던 검은 레깅스 차림의 서양 여자애들이 흘낏 쳐다본다. 회갑을 넘긴 내 나이를 그들이 알리는 없지만 늙어서 주책이라고 하는 것 같아 혼자 민망하다.


내가 타는 것은 탠덤(tandem)이라는 2인승 패러글라이더다. 뒷자리에 숙련된 조종사가 있으니 나는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바람막이 재킷의 지퍼를 채우고 신발 끈을 단단히 맸다. 간단한 소지품은 주머니에 따로 보관했고 선글라스는 끈으로 연결했다. 헬멧도 꽉 조였다. 멜빵 의자에 앉아 안전벨트가 단단히 고정되었는지 다시 확인한다.


드디어 차례가 왔다. 앞사람이 뛰는 걸 눈여겨본 대로 달리라는 신호에 앞으로 내닫는다. 어느 순간 내 발이 공중에 떠 있다. 야호! 드디어 날았다.

그날 사랑 고트의 하늘은 만원이었다. 갖가지 고운  색의 캐노피들이 서로 부딪힐 듯 아슬아슬 서로를 비켜갔다. 어떤 것들은 너무 가까이 다가와(혹은 우리가 다가갔는지) 순간 하늘에도 교통신호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머리 위에, 아래에, 양 옆으로 일렁대는 날개들이여.


침엽수림이 울창한 숲을 한참 돌다가 계곡의 계단식 농경지로 간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논밭에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이고, 레이크 사이드에서 올라오는 길은 지렁이처럼 꿈틀거린다. 쪽빛 하늘을 배경으로 안나푸르나 설산이 흰 구름과 뒤섞였다. 봉우리 너머 봉우리들이 겹겹이 포개졌다.


어느 순간 고요가 찾아왔다. 아래를 보니 페와호다. 가늠되지 않던 호수가 한눈에 보인다. 호수 안의 섬이 주먹만 하다. 저 멀리 포카라 시내는 그림엽서를 펼쳐 놓은 것 같다. 호수 끝 습지에는 히말라야 빙하에서 녹은 물이 하얀 실핏줄처럼 얼기설기 흘러내린다. 은빛 가루를 뿌린 듯 영롱하게 반짝이는 수면 위로 내 그림자가 지나간다.


아무 생각 없이 공중을 유영하며 차고도 달콤한 바람에 나를 맡긴다. 닫힌 생각과 내재된 욕망과 잠재의식 속의 묵은 찌꺼기들이 허공에 흩어진다. 내 몸이 점점 가볍다.

갑자기 세상이 뒤바뀌었다. 하늘이 발밑을 떠받들고 머리 위로 호수가 펼쳐졌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내 발아래서 둥둥거렸다.

세상에! 성남 공군비행장 국군의 날 행사 때 본 것 같은 공중곡예를 한 것이다. 나의 환호에 조종사는 또다시 공중을 돌았다. 그리고 세 번째 돌기를 할 때 나는 다급하게 스탑! 을 외쳤다. 오장육부가 요동을 쳤다.


서서히 고도가 낮아지고 지표면이 가까워진다. 호숫가의 습지에 안착했다.

끝없는 인간의 욕망은 새처럼 날고자 했다.

언젠가 한 번은 나도 새처럼 날고 싶었다. 그리고 날았다.

가당찮은 꿈이란 없다. 꿈이 있으면 기회는 온다. 꿈이 있는 삶은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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