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에 도착한 다음날은 성 고난 주일이었다. 아침 10시경 아르마스 광장에 도착하자 리마 대성당의 예수 고난 주일 예식은 이미 시작되었다. 십자가에 박힌 예수의 상을 매고 성당을 한 바퀴 도는 행사였다. 여행의 시작부터 일 년에 한 번 있는 행사를 볼 수 있다니 행운이다.
행렬의 시작은 흰색 상의를 입은 밴드였다. 밴드가 곡을 연주하면 뒤따르는 성가대는 노래를 불렀다. 깊고 넓고 한없이 묵직한 성가를 들으니 이 세상 모든 슬픔이 이곳에 몰려있는 것 같다. 진한 보라색 예복이 고통으로 염색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들이 내뿜는 고난의 농도는 짙었다.
성가대 뒤로 성모님의 팔에 안긴 아기 예수가, 그리고 뒤이어 십자가에 매달린 대형 예수의 조각상이 여러 사람의 어깨 위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상을 매고 가는 남성 신자들의 모습은 인간의 얼굴이 고통을 표현하는 가장 큰 무기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처절하게 일그러진 그들의 표정과 몸짓들은 예수의 사망 당시에 제자와 신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보여주었다.
어쩌면 저 고통은 예수의 죽음과 지금 매고 가는 저 조각상의 무게와 자신의 삶에서 느낀 고통이 한꺼번에 엮인 복합적인 것이 아닐까. 일종의 슬픔의 카타르시스 같은. 어릴 적 동네에 초상이 났을 때 상주 못지않게 통곡하는 사람에게 ‘자기 슬픔에 운다’ 고 하던 어른들의 말이 생각났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예수가 성당으로 들어가기 전에 성당 내의 성모 마리아가 나가서 아들을 맞는 장면이었다. 죽은 자식을 맞으러 가는 어머니의 마음이니 당연히 슬픔은 최고조에 올랐다. 구경하는 사람들도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한 마음이 되었다. 그때까지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분석하던 나도 저절로 눈물이 났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사정없이 흐른다. 나도 슬픔의 굿판을 이용해서 미처 인식하지 못했거나 일부러 모른 체했던 지난 인생의 슬픔들을 용광로처럼 녹여낸 것 같다.
통곡과 환희 속에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가 함께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면서 외부 행사는 끝났다. 안에서는 다시 미사가 시작될 것이다. 고난이 끝났으니 이제 부활의 기쁨이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24시간이 걸려 도착한 남미의 첫 여행지에서 인식하지 못했던 슬픔을 태웠으니 앞으로 약 한 달 보름 동안 즐거운 여정이 기다릴 것이다. 광장을 가로질러 노란 건물(대통령궁) 쪽으로 가는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