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조미 카라가울리 국립공원은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된 유럽에서 가장 큰 공원 중의 하나다.
산행 코스 상담과 허가를 위해 국립공원 방문자센터에 들어서자 아파트 4,5층 높이의 커다란 리치 나무가 열매를 가득 달고 반긴다.
큰 공원답게 일주일 정도부터 일일 코스까지 약 10여 개의 트레일 코스와 난이도 등을 간략히 설명해준다. 우리는 일일 코스와 전망대 하나를 추가하기로 했다. 거리는 약 19km다.
공원 입구에서 하차 푸리(치즈를 넣은 조지아 빵) 하나를 샀다. 숙소에서 준비해 온 오이와 배, 사과와 물 500ml, 소시지 1개가 있으니 이만하면 됐다. 물을 더 살까 하다가 지하 8천 미터 빙하에서 나온다는 광천수를 먹어야지 하면서지나친다.
울창한 삼나무 숲으로 들어선다. 하늘을 떠받치듯 높이 솟은 나무가 무성한 그늘을 만들어 임도를 덮는다. 간밤에 온 비로 넘친 개울물이 길바닥에 찔금거린다.
맑은 물에 말똥이 섞여 떠돈다. 청정한데 청정하지 않다.
드디어 등산로 입구다. 굵은 나무나 바닥의 돌, 혹은 잘려나간 그루터기에 여러 가지 색깔이 칠해져 있다. 트레일 표시다. 색깔이 겹친 곳은 길이 겹친다는 뜻이다. 위로 갈수록 길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갈림길 몇 개가 지나고 또 갈림길. 오른쪽은 붉은색, 왼쪽은 노란색과 검은색이다. 우리는 노란색을 따라가야 한다. 가파른 오름이 시작된다. 길은 좁고 나뭇잎이 쌓여서 미끄럽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숲은 사방이 눅눅하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언제부턴가 물소리도 끊어졌다. 전날 밤 비를 뿌린 구름이 다시 몰려든다.숲이 울창할수록 길은 어둡다.
맵스 미를 켜고 길을 살핀다. 저쪽에 빠끔히 하늘이 보인다. 8부 능선쯤 왔으니 조그만 더 가면 된다. 공룡이 바로 나타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원시의 숲에 앉아서 푸리 몇 조각을 뜯어 우걱우걱 삼킨다. 서서는 보이지 않던 꽃 몇 송이가 눈에 들어온다. 햇볕도 잘 들지 않는데 용케도 꽃을 피웠구나. 그것도 화려하게.
문제는 물이다. 수분을 보충해줄 과일은 진작 먹었고 물병에 남은 물은 겨우 한 컵 정도다. 아침에 흘깃 본 생수병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입산 허가증을 확인한다는 관리인은 어디에 있다는 거야. 광천수는 어디에 있고? 오전에 비박 장비를 맨 외국인 두서 너 명 지나간 뒤로 사람은 그림자도 없다. 오직 우리뿐이다. 저만치 희미한 그림자가 다가온다. 자세히 보니 먼저 간 일행이다. 같이 간 팀을 놓쳐 혼자 하산하는 중이란다. 우리도 물이 없어 내려가려고 한다 하니 물을 한잔 따라 준다. 건조했던 입 안에 물이 들어가니 기운이 솟는다. 다시 오르자. 일행이 셋이 되니 용기가 배가 된다.
소실점 끝에 하늘이 보이나 싶은데 이번에는 천둥번개가 친다. 하늘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하다. 간이 콩알만 해 진다. 다시 내려가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날이 갠다.
우리는 왔던 길을 되짚어간다. 기미도 없이 하늘이 툭 터졌다.
오락가락했지만 결국 목표지점에 왔다. 축구장 반만 한 개활지는 커다란 꽃바구니다. 색색의 꽃들이 현란하게 피어 있다. 바람결 따라 꽃들이 물결친다.
전망대로 갔다. 발아래 산그리메가 펼쳐졌다. 첩첩한 산들이 시선 끝까지 머문다. 목이 다시 말랐다. 물병을 쥐어짰다. 마지막 한 방울로 혓바닥을 축인다. 저 숲 어디엔가 광천수가 있을 텐데, 갈증이 나니 나무의 수액이라도 빨아먹고 싶다.
길을 나설 때는 현장을 더 꼼꼼하게 조사해야 함을 물 한 모금으로 다시 깨닫는다. 오늘 28km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