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중북부 밀림을 한참이나 달렸다. 밀림 속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덩어리 ‘시기리야 락 (Sigiriya Rock, 사자 바위)’ 이 드디어 나타난다. 지금 나는 저 수직 바위 꼭대기에 있는 고대도시를 찾아가는 길이다. 세계 8대 불가사의라는 공중도시를 누가, 대체 왜? 만들었나?
5세기 후반, 약 천년 동안 스리랑카의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를 다스리던 왕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평민인 어머니를 가진 장남은 귀족의 피가 흐르는 동생에게 왕위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의심 끝에 아버지를 살해하고 직접 왕위에 오른다. 패륜을 저질렀으니 당연히 불안하다. 왕은 수도를 이곳으로 옮긴다.
왕의 재위 기간은 18년, 요새 건설에 7년이 넘게 걸렸고 나머지 10여 년간 이곳에서 나라를 통치했다.
서기 495년 인도로 망명했던 동생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그와 전쟁을 하러 요새에서 빠져나갔다가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 이름은 카사파, 다투세나 왕의 장남이다.
이끼 낀 돌계단을 지나고 날카로운 돌사자의 발톱을 지나 급경사의 철제 계단을 오른다. 뒤돌아보니 아찔한 절벽이다. 변변한 장비도 없이 절벽을 타고 올라 왕의 궁전을 지은 백성들의 고통을 생각해본다. 지금도 남아 있는 절벽의 홈들은 그 옛날 바위 꼭대기로 건축자재를 올리기 위한 장치였을 거라고 한다. 아차 하다 절벽 아래로 미끄러져 산화되었을 옛사람의 흔적은 간곳없고 나뭇가지를 흔들며 뛰어다니는 원숭이들 소리만 요란하다.
영국 식민지 시절 만든 지금의 철제 계단 이전에는 바위에 구멍을 내어 대나무로 얼기설기 계단을 만들었는데 왕은 그 길을 가마를 타고 올랐다 한다. 예나 지금이나 나쁜 지도자는 백성의 피눈물을 먹고 산다.
마침내 1202개의 계단을 다 올랐다. 지상으로부터 약 200미터 높이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에 서니 밀림이 발아래 펼쳐졌다.
고대도시의 궁궐터에는 벽돌만 뒹군다. 한때 궁녀만 500명이 넘었다는 이곳에는 건물의 흔적만 남아있다. 이 공중도시에서 먹고 입을 것은 전부 절벽을 통해 올라왔을 것이다. 바위를 뚫어 수로를 만들고 대나무를 이용하여 지상의 물을 끌어올렸다는 인공 저수조에는 지금도 물이 고여 있다. 왕의 목욕탕이었다는 그곳에 흰 구름이 내려앉았다. 두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암반에 용케도 잘 자란 몇 그루의 나무가 이곳의 삭막함을 조금 덜어준다.
한 무리의 승려들이 저쪽에서 붉은 가사를 휘두르며 염불을 한다. 왕이 사용하기 전에 이 바위는 일부 승려들의 수도터였다고 하더니 저기가 절터였는지도 모른다.
요새를 한 바퀴 돈 뒤에 난간에 걸터앉았다. 발아래 펼쳐진 녹색의 정글 위로 오후의 햇살이 스며든다. 그 모습이 한없이 평화롭다. 그때도 이런 평화를 느낄 수 있었을까? 모르긴 해도 공중에서 지탱하는 삶은 부유하는 영혼처럼 어딘가 불안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고 늘 헤매듯이 살았을 것 같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십 년이나 바위 위에서 생을 이어갈 동안 발 밑에 감기는 보드라운 흙의 감촉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귀한 대접을 받았을 것 같다.
권력을 손에 쥔 왕은 최선이라 생각한 자신의 선택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 징검다리였다는 것을 이곳에서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시기리야, 이 공중도시에서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자신을 들볶으면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새겨본다. 헛된 욕망은 자신을 괴롭히고 주위까지 불행하게 한다.
잘못된 선택으로 고통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과하게 잡으려고 안달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의 거울을 찬찬히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