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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창고 Sep 14. 2021

야딩 트레킹

동티베트 오지들

야딩(亚丁)은 티베트어로 ‘햇살 좋은 땅’이란 뜻이다. 1박 2일의 야딩 트레킹을 위해 먼 길을 돌아왔다. 청두(成都)에서 모시촌, 캉딩, 신두챠오 등의 오지를 거쳐 따오청으로 왔다. 따오청에서 야딩까지도 약 111km가 된다. 따오청에서 흰 눈에 덮여 하얗게 빛나는 포와산(해발 4513m)을 지나 상그리라 진으로 왔다.


1933년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은 내쇼널지오그래픽의 사진 한 장을 보고 저 멀리 동양의 쿤륜 산맥 어딘가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가상의 낙원이 있을 거라며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을 썼다고 한다. 소설과 가장 비슷한 곳이 윈난성의 상그리라와 이곳 쓰촨 성 야딩의 상그리라 진이라고 한다.


좁은 골짜기 따라 비좁게 늘어선 객잔들 위쪽에 야딩 풍경구(亚丁风景区)로 가는 매표소가 있다. 허연 수염을 단 길옆의 나무들을 보며 몇 구비 산을 돌자 저 아래 자그마한 마을이 아담한 풍경이 되어 나타난다.

숙소에 가방을 맡기고 바로 나선다.

우리가 묵었던 마을


풍경구로 가는 셔틀버스 옆자리의 중국 여성이 말을 건다. 휴가를 받아 친구들과 이곳에 왔다는 그녀는 커다란 소니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전문가용 카메라를 맨 중국인들이 꽤 여러명 보인다.  

입구는 공사 중이었다. 관람객을 위한 편의시설을 짓는 모양이다.  4km 정도 오름길 끝에 타르초가 날리는 돌탑이 나타났다. 설산에서 내려온 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다리를 건너니 5대 달라이 라마가 지었다는 총구스(冲古寺)다.

충고사



절 뒤편 계단으로 두 시간쯤 걸어 쩐주하이(珍珠海)(해발 4080m)에 도착했다. 푸른 물빛에 센나이르 설산(해발 6032m)이 잠겨 있다. 누렇게 물든 가을 단풍과 푸른 물, 설산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다. 자연이 그려내는 최상의 그림에 그저 감탄한다. 한쪽에서는 웨딩 사진을 찍고 있다. 순백의 드레스가 호수의 물빛에 어려 더 밝게 빛난다.

호수 주위를 천천히 걷는다. 햇살이 호수에 부서지며 파란을 일으킨다. 호수 반대편으로 오니 센나이르 봉우리가 잡힐 듯 가깝다. 빙하에서 흘러내린 물이 갈래갈래 내를 이루고 작은 관목 사이로 꽃은 앞 다투어 피었다.     

 

진주해

다음날은 비가 왔다. 그칠 듯 그치지 않은 비를 맞으며 전동차를 타고 낙융목장(洛絨牧場, 해발 4180m)에 내렸다. 층고 초원에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오늘 갈 곳은 해발 4600m의 오색해와 바로 그 아래에 있는 우유해, 왕복 10km의 길이다. 체력을 아끼려고 말을 타고 일부 오르기로 했다. 장족들이 소를 키우던 낙융목장에서 말을 탄다. 말 한 필에 300위엔, 다소 거금이다. 그런데 본격적인 오름길 시작 전에 말에서 내리라고 한다. 지금부터 힘든 길인데, 속으로 투덜댄다. 길이 좁고 험해서 말이 다닐 수 없긴 하겠다. 고어텍스 등산화를 신은 우리와 달리 현지인들은 주로 일반 운동화에 비닐 덧신이다. 산소통을 입에 대고 오르는 사람들도 있다.


가늘게 내리던 비는 진눈깨비가 되어 사람을 후려친다. 오리털 잠바에 고어텍스 재킷, 비옷까지 입었는데도 한기가 든다. 방수 치마를 꺼내 바지 위에 두르고 얇은 워머, 두꺼운 워머 다 꺼내 두른다. 살얼음 낀 길에 스틱을 꽉꽉 눌러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저 멀리 우유해가 눈발 속에 푸르스름한 빛을 낸다. 야딩의 삼호주신산 중 가장 높은 관세음보살봉은 눈발에 갇혀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손이 얼어서 인증샷 찍기도 어렵다. 점심으로 먹으려던 발열 행동식은 꺼낼 엄두도 못 낸 채 과자 몇 개로 허기를 메운다.

이제 100미터 더 높은 곳에 있는 오색해로 간다. 친구의 발걸음이 자꾸 늦어진다. 안색이 파랗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더는 못 가겠다고, 하산하겠다고 한다. 잠시 갈등한다. 몇 발짝 더 가면 오색해인데, 친구를 두고 혼자 갈 수도 없다. 나도 지치긴 했다. 그래 내려가자.

좌/오색해 가는 길, 우/우유해

가쁜 숨을 쉬며 오르는 현지인들이 남은 길을 묻는다. 10분, 20분…, 조금만 더 용기를 내라며 애써 미소 짓는다. 내려가는 길이 너무 멀다. 이 길을 어떻게 올라왔지? 더구나 길 한 옆은 낭떠러지 절벽이다. 비구름이 우르르 골짜기 속으로 몰려간다.  

드디어 층고 초원에 다시 들어섰다. 누렇게 변해 가는 풀들이 바람에 누웠다 일어난다. 춤을 추는 것 같다. 풀밭 사이에 하얗게 에델바이스가 무리 지어 피었다.

거기 산이 있어서 오른다고 했든가? 거기 낯선 풍경이 있어서 나는 길을 나선다. 집 떠나면 고생인 걸 뻔히 알아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자석처럼 나를 이끈다. 힘들 때에는, 여행이 끝난 뒤 우리 집 소파에서 세상 편한 자세로 편히 쉬면서 지금 이 순간을 되돌아볼 나를 생각하면 힘이 솟는다.

센나이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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