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의 홍콩 야자가 게으른 주인에게 시위하듯 제멋대로 가지를 뻗은 채 무성하다. 어젯밤에 내린 눈이 녹아서 우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햇살이 활짝 나면 좋을 텐데, 희끄무리한 하늘은 빛을 보여줄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오늘이 당직이라는 큰 애는 미리 왔다 갔고, 다른 아이들은 세배가 끝난 뒤 방으로 들어가더니 꿈적도 하지 않고 있다. 남편은 운동하러 나갔다. 명절날이 이렇게 한가롭다니, 찜해 놓았던 영화나 몇 편 볼까? 반납일이 다가오는 책을 읽을까?
시어머니와 살 때는 시누이들이 번갈아 찾아와 연휴 동안 나는 주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시누이들이 가고 나면 언니가 왔다. 서울 시댁에 들렀다가 가는 날 잠깐 들리는 언니는 명절날 친정에 가지 못하는 나에게 상당한 위로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고향에 다녀오던 동생들이 어머니가 보낸 참기름, 떡, 강정 같은 먹거리를 한바탕 풀어놓고 가면 명절은 어느새 끝나버렸다.
십몇 년 전의 설날이 떠오른다. 시어머니가 돌아간 후 결혼 25년 만에 처음으로 명절날 친정나들이를 했다.
새벽부터 서둘러 차례를 지내고 고향으로 가면서 나는 약간 흥분된 상태였다.
고향집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좀 지났다.
종부인 어머니를 보러 일가친척들이 하나둘 집으로 왔다. 처음 보는 꼬마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고 일가의 며느리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큰 올케를 보며 내가 이방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누군가의 현재인 공간에 과거의 내가 끼어 들어간 기분이었다.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어렸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고향을 찾아온 일가의 딸들이 종손 어른인 할머니에게 세배를 왔다. 세배를 마치고 나가는 사람과 세배를 하러 들어오던 사람이 대문 앞에서 만났다. 그리고 또 저쪽에서 두 사람이 오고 있었다. 한 동네서 자란 어릴 때 친구를 만난 그녀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더니 나중에는 골목이 떠나가라 웃어댔다.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소싯적 추억을 나누는 그들이 낯설었다. 그녀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우리를 골목에서 내쫓는 것 같았다. 명절 사나흘 후 고향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면 아무에게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은 사실에 안도하면서 다시 골목을 누비곤 했다.
25년 만에 친정에서 명절을 보내던 그날, 어린 나에게 뭔가의 이질감을 주었던 동네 고모들이 바로 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마음속 한가운데 있던 고향은 이제 돌아갈 수 없는 나의 과거였다. 그때까지 이방인의 마음으로 살고 있던 서울이 나의 현재이고 미래임을 분명하게 알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애정을 가지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시야를 가리던 장막 하나를 벗겨내자 이웃에게 관심이 더 많아졌고 무심하게 지나치던 거리가 더 정겹게 보였다. 진정한 서울 특별시민이 되었다.
레트로 감성의 카톡 신호음이 ‘따다닥’하고 들어온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다. 평소엔 무덤덤했어도 아직 관심과 애정이 있다는 이런 소통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좋은 일만 생기라는, 복 많이 받으라는, 언제나 즐겁게 지내길 바란다는 인사처럼 우리 인생이 단순하게 흘러가진 않지만 힘들 때는 기댈 어깨가 되어줄 수 있다는 나지막한 신호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어렸을때 골목을 누비며 친구들과 노래하던 날들이 떠오른다. 시끌벅적하지 않고 조용한 이런 설날도 참 좋다.
커피가 벌써 식었다. 미지근한 커피잔을 입에 대면서 나의 일상이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은근한 온기를 지니며 나아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