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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창고 Sep 17. 2022

오래된 미래 라다크에서

라다크 레의 첫날

인도 델리에서 새벽 6시 45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오전 8시 정도에 인도 북,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원지대 중의 하나인 라다크 린포체 공항에 나를 내려놓다. 황량한 사막 가운데 제법 넓은 활주로 비해 낡고 비좁은 공항 청사 주위로 신축 중인 새 건물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오래된 미래인 라다크는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중이었다.

공항의 컨베이어 벨트는 작다 못해 앙증맞다.

입국신고서를 제출하고 코로나 예방접종 증명서를 보여준 뒤에 공항 밖으로 나왔다.

맑고 푸른 하늘 아래 강렬한 태양이 우리를 환영한다.

공항청사의 작은 컨베이어 벨트



육로로 조금씩 고도를 높이면서 온 게 아니라 갑자기 3500미터의 고지대어온 터라 조금만 빨리 움직여도 금세 숨이

천천히, 천천히, 주문을 외듯 빠름에 길들여진 자신에게 주문을 건다.


마중 나온 를  타고  게스트 하우스로 간다. 마을은 온통 공사판이다. 옛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어수선함을 오래된 미루나무가 의연하게 달래주는 듯 보인다. 노랗게 물들어 는 미루나무의 잎이  햇살에 반사되어 윤슬이 일었다.

라다크의 햇살은 강렬하다


드디어 왔구나.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스웨덴 출신 어학자이자 생태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을 읽는 순간, 언젠가는 라다크에 가보리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가능하지 않은 꿈으로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현실이 되 작은 감동이 밀려든다.

그녀가 활동한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에 이미 다크는 세계화 현대화의 물결에 휩쓸렸다고 했다. 은둔의 왕국 레의 후손들이  급격한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가는 모습은  여러 가지 사례로  나와있었지만 나는 래도 라다크를 보고 싶었다. 메마른 사막의 한 계곡에서 오랜 삶을 이어온 그 장소와 그들의 삶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델리에서 레에 오는 동안 비행기 왼쪽 창가 자리에서 보는 인도 북 지역 산맥의  거칠고 메마른 모습은 장관이었다. 인간의 손길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풀 한 포기 없는 갈색의 산맥은 장엄하기 그지없었다. 가끔 꼭대기에 흰 모자를 씌운 듯 간신히 남아있는 눈을 머리에 이거나 산맥 사이의 깊은 계곡에 흰 눈이 남아 있긴 하지만 사막화된 산이 주는  황량함은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게 했다. 

생명의 잉태를 단호하게 거부해 보이는 산의 계곡에서 흘러나온 물로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으니 숨겨진 자연의 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흙먼지로만 덮여있는 산맥은  쓸쓸하고 고독해 보였다.

인도 북부의 산맥들


고도 적응을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의 창문 곁으로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미루나무가 있다. 그 사이로 검붉게 익어가는 사과나무가 있고 이곳의 명물인 살구나무 있다. 살구나무는 열매사람들에게 다 내어준 채 무성한 잎사귀만 갈색으로 물들어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곰파에서  불경 소리가 청아하게 들린다.

약간 어지럽던 머리는 뜨뜻한 물을 많이 마시고 몸을 따뜻하게 하니 진정되어 밖으로  나가본다.

숙소 풍경과 창 밖의 풍경


좀 전까지 강렬했던 햇살이 금세 꼬리를 감춘다. 

실내에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먼 곳에서 개 짖는 소리도 들린다. 이웃집 어느 아낙의 새된 소리도 들린다. 화를 낼 줄 모르며 욕심이 없고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던 라다크 사람들이 화를 내고 자신을 가난하게 여기기 시작했다더니 저 여인의 목소리가 이곳이 변했음을 느끼게 해 준다. 게스트하우스의 발코니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서서히  레의 분위기에 스며든다. 아무것도 안 할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저 좁은 돌담 골목 사이로 어떤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내일을 기대한다.

환하던 마을이 금세 어두워졌다


흔히 여행지에서는 많이 보고 체험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다.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면 더욱 그렇다.

여기 언제 또 올 건데 하는 욕심으로 빠듯한 일정을 이어가다 지치기도 한다. 

고도 적응을 위한 자발적 휴식이긴 하나 여행지에서 이렇게 느긋하게 쉬보니 나름 매력이 있다. 앞으로 이런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의 모든 티끌을 태울듯한 햇살은 쏜살같이 가버리고 이제 제법 어둡다. 바람이 아까보다 더 싸아하다. 몸이 차지면 고산증세가 다시 올지도 몰라서 서둘러 방으로 들어왔다.

게스트 하우스의 활짝핀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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