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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창고 Sep 29. 2021

도긴개긴

둘이 닮았다

아프다고, 아프다고 그가 노래처럼 말할 때 나는 코웃음을 쳤다.

삼시세끼 잘 먹고 잘 지내다가 뭔가 귀찮은 일이 맡겨진다 싶으면 그는 아픈 핑계를 댔다. 뭐 처음부터 그랬다는 건 아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남성에게 여성 호르몬이 많아진다더니 원래도 부드러운 성격에  호르몬이 더해진 탓인지 아님 늦둥이 막내 기질이 발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엄살도 그만하면 갑이라고 혼자 구시렁거린다.

안 아파 본 사람은 아픈 사람 마음을 모른다고 했다. 세상에 모를 일이 어디 한두 가진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겪어보지 않는 일에 내가 공감한다고 해도 그건 어디나 표피일 뿐이다. 나도 잘 모르는 내 속을 누가 나만큼 알 수 있겠는가.

얼마 전부터 오른쪽 어깨가 아프다. 심하지는 않지만 높은 선반에 있는 물건을 꺼낼 때 뜨끔 하는 기분이 불쾌했다.


거의 십 년쯤 전에 왼쪽 어깨가 아팠다. 겨울 산행을 하다가 딱 하고 부딪히는 느낌을 받은 후였다. 바윗길을 오르던 중이었는데 스틱 찍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팔을 최대한 내뻗다가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영하의 날씨였다. 찬 기온에 굳은 근육이 무리가 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통증이 점점 심해지더니 나중에는 팔을 위로 올릴 수도 뒤로 보낼 수도 없었다.


집 근처 대로변에 새로 생긴 정형외과에 갔다. 몇 번 물리치료를 하는 사이 팔은 점점 굳어갔다. S대 출신의 정형외과 의사 아무개는 남의 사정에 전혀 신경 안 쓴다는 듯한 건조한 말투로 종합병원 진료의뢰서를 써 줄 테니 가서 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수술요?'

평소 감기도 잘 안 걸리고 살았다. 예방주사도 가능하면 안 맞고 살았는데 수술이라니.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수술하고 입원하고 회복 치료하면 최소 몇 주는 병가를 내야 한다.

병가를 좀 쓴들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비수술 치료를 잘한다는 병원을 찾았다. 한의원이었다.

'회전근개파열'이 나의 병명이었다. 사진으로 본 어깨 근육 한 부분이 닳은 고무줄처럼 너덜거렸다. 그곳을 채워 넣는 치료를 시작했다. 침을 맞고 한약을 먹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지금껏 아주 멀쩡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른쪽이다. 그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중에 오른쪽이 아플 수 있어요. 석회가 좀 차 있어요'.

그때가 지금이란 말이지? 오랜만에 찾은 병원에는 예전보다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그 사이에 어깨가 아픈 사람이 이렇게나 늘었나?

어쨌든 나는 다시 침을 맞기 시작했다. 내가 아프고 보니 그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겉으로 멀쩡하다고 안 아픈 건 아니다. 앞으로 아프다고 할 때마다 좀 더 다정하게 위로의 말을 건네야겠다.

근데 어디가 아프다고요? 편두통이랍니다. 온갖 의료장비를 동원하고 텔레비전과 잡지에 소개된 명의를 찾아도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답니다. 아니 유능한 의사들의 견해는 아플 이유가 없다는 것인데요. 저는 그것이 일종의 유전자 때문이라고 제 멋대로 진단합니다.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계속 편두통에 시달리는 걸 봤거든요. 그리고 평소에 그 사람은 참말이지 엄살이 좀 심하답니다.

같은 고추를 먹다가 내가 '어, 좀 맵네' 하면 그는 '어휴, 매워, 매워, 매워'라고 혀를 내두른다. 나도 매운 걸 꽤나 못 먹는 사람인데 말이. 매사가 그런 식이라 어느 정도 거품을 빼고 듣는 편이다.


그나저나 건강 백세가 소원인데 요 정도는 애교로 봐줘야 하나? 하다가도 가끔은 짜증이 나니 도긴개긴이다. 엄살이 심하다고 흉을 본 내 짝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혼자 피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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