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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창고 Sep 23. 2021

안부를 묻습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하자면 자리에 집착하여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실은 자리에 연연하지만 그 자리를 지키기 어려울 때, 자의든 타의든 그 자리를 비워줘야 할 때 자주 듣는 말이다. 힘이 센 자리, 내로라하는 자리에서 권세를 누리다가 어떤 이유로 그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유명인사들이 항복하기 직전에 인사치레로 자주 쓰는 말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도 있다. 어떤 지위에 있는 그 사람의 가치를 모르다가 떠나고 나서야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때 우리는 난 자리를 아쉬워한다. 이것은 또 곁에 있는 대상과 헤어지고 난 후 그(그것)와 함께 공유한 추억을 회상하며 그리워할 때도 사용하는 말이다. 어떤 경우이든 결국은 ‘있을 때 잘해’가 된다. 주위를 잘 살펴보시라. 떠난 뒤에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합시다.


 ‘누울 자리 봐 가며 발을 뻗어라’는 말은 어떤 일을 할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미리 살펴보라는 뜻으로 어떤 일에 대중없이 덤비지 말고 앞뒤를 헤아리며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말이다.  

 사람이 냉정하고 쌀쌀맞을 때는 ‘앉는 자리에 풀도 안 나겠다’는 말로 인정머리 없음을 나무라고, 평소 별 볼일 없던 사람이 어떤 지위를 얻게 되어 그에 걸맞은 행동과 역할로 변해 갈 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며 그의 변모를 인정한다.


 ‘지위나 직위, 처신, 행동’ 등의 방향을 가리키는 자리뿐 아니라 ‘자리다툼’이 일어나는 유형의 자리도 있다.

 일주일에 세 번 문화센터에서 하는 스트레칭 교실에는 암암리에 형성된 고정석이라는 게 있다. 그 강좌가 맨 처음 열릴 때부터 수강한 분들과 몇 년씩 연속한 분들의 자리다. 맨 처음 그곳에 갔을 때 앞자리에 멋모르고 앉으려다가 동시다발적으로 ‘자리 있다’고 하는 말에 무안해진 뒤로 맨 뒷자리로 간다. 비어 있어도 빈자리가 아닌 그 자리나 뒷자리나 내가 보기엔 오십보백보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의 레인은 총 다섯 개다. 나는 맨 바깥쪽 레인을 선호한다. 창 옆이라 햇살이 잘 들고 좀 더 넓기 때문이다. 7층이라 하늘을 볼 수 있고 햇빛이 물에 녹아들어 잔무늬를 만들어 내는 그곳이 나는 좋다. 그러고 보면 나도 자리에 욕심이 있는 셈이라 남 말할 게 못된다.


 은퇴 후에 이런저런 강좌를 기웃거리다 보니 사람들이 의외로 앉는 자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강의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출석률이 좋은 곳일수록 특정 자리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고정석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사람을 가른다. 오래된 사람과 새로 온 사람. 뒤에 온 사람은 알게 모르게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제발 아무 자리에나 그냥 앉읍시다’라고 말하고 싶은 곳이 가끔 있다. 물론 속으로만 한다. 드러내 놓고 유난한 티를 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사소한 불편은 내 마음자리를 잘 다독이면 되니까.


 다른 사람과 경쟁할 필요도, 눈치 볼 필요도 없는 이 마음자리를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천국도 되고 지옥도 된다. 알면서도 잘 안 되는 게 내 마음 다스리기다. 과한 욕심과 시기심은 마음을 아프고 병들게 한다. 많은 것을 가지고도 마음자리가 불편하여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세상을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혹은 몇 안 되는 자리를 두고 오늘도 기싸움을 하며 권좌에 오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신가요? 뺏고 뺏기는 자리에 모든 걸 걸지 말고 마음자리에 집중하여 평화를 누리시길. 당신 어디서나, 언제나 행복하길 바라며 선물 같은 하루를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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