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 토크 & 리더십 시리즈 연재를 시작하며
이 장면 때문이었다. 2018년 8월 27일 저녁. 퇴근 후 지친 몸으로 킨 TV에서 막 자카르타-팔레방 아시안 게임의 한국-우즈베키스탄의 남자축구 8강 경기의 후반전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시안게임 23세 이하 축구 대표팀은 병역의무 면제가 달려 있던 손흥민, 김민재, 황의찬, 황인범, 황의조가 뛰고 있었다. 치고받는 공방 끝에 3:3. 경기는 연장전으로 들어갔다. 연장전 하프타임이 끝나갈 무렵 경기장에 널브러져 있던 선수들을 감독 김학범이 끌어 모았다. 어깨동무를 시켜 서로를 연결했고, 저 형형한 눈빛으로 선수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고함을 치며 북돋웠다. 마지막으로, 사력을 다해 구호를 선창 하는 사진 속 저 표정. 선수들이 각성할 수밖에 없는 그라운드 밖에서 애가 닳는 리더의 진심이었다. 같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절대 지지 않을 것 같았다. 30분이 흐른 뒤, 기어이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김학범은 평소의 호랑이감독 평판과는 다른 경기 후 인터뷰를 했다. “너무 힘들게 온 거 같아요. 힘드네요”라며 벌게진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숨겼다. 결승전까지 간 한국은 일본을 꺾고 아시안게임 정상에 오른다. 펩 토크(Pep talk)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을 때 반사적으로 다시 이 장면이 연결되었고, 펩 토크와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를 연결시켜보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펩 토크가 뭘까
펩 토크(Pep talk). 직역하면 짧은 동기부여 연설(motivational speech)이지만 맛이 안산다. 그냥 펩 토크로 쓰겠다. 태생이 스포츠인 오리지널 펩 토크는 짧고, 강하다. 경기직전, 하프타임 시간에 강력하게 각성을 시키는 스피치다. 잡생각을 떨쳐버리게 하고, 목표에 집중하게 만들면서 전의를 불타오르게 하는 것이다. 가슴에 불을 댕기는 화살이 만드는 영감과 흥분과 강화의 말이다. 펩 토크를 처음 쓴 사람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기원은 후추설이 유력하다. Pep이 pepper에서 유래한 약어다. 후추의 자극이 주는 환기 효과와 이를 통한 에너지 획득을 뜻하는 의미였다. 1900년대 초반 슬랭(slang)으로 시작되었다.[1] 1913년에 달달한 과자들로 지금도 유명한 라이프 세이버스사(Life Savers)에서 Pep-O-Mint라는 민트사탕을 내놓은 기록이 있는 걸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꽤나 유행했나 보다. 그러다 미식추구와 야구 코치들이 팀원들에게 사기를 진작시키는 짧고 강렬한 열설을 펩 토크라고 부르게 된다. 신문에 pep talk라는 말이 등장한 게 1927년 미국 오하이오의 Mansfield가 처음으로 확인된다.[2] 이후 펩 토크는 힘을 주는 짧은 연설이란 뜻으로 스포츠 분야 여기저기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펩 토크란 말이 스포츠에서 시작된 것이지, 이런 류의 말은 매우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대표적인 것이 군대와 전투에서이다. 전쟁영화의 클리셰 중 하나가 장수가 군사들의 사기를 드높이는 연설을 하는 것이다. 영화 ‘300’의 레오니다스왕(제라드 버틀러 역)은 첫 대규모 전투 직전, 부릅뜬 눈으로 대열에 가장 앞에서 이렇게 외친다. “우리는 이 영토를 지킨다. 우리는 싸운다. 저들이 죽을 곳은 여기다!” 부관이 이어간다. “명예로운 죽음을!” 왕이 마무리한다. “이날을 기억하라. 오늘의 전투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생사가 오가는 전투를 오늘날의 스포츠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나 어쨌든 시작은 저런 모습이었다. 스포츠 영화에도 이런 경기 전 명 펩 토크 중 하나가 영화 ‘미라클’에 있다. 스포츠사상 가장 위대한 업셋(upset)중 하나로 불리는 1980년 동계 올림픽 아이스하키 결승전을 다룬 영화다. 극강 소련에 힘겹게 맞서는 미국 대표팀 감독 허브 브룩스(커트 러셀역)는 이렇게 말한다. “소련에 맞서 10번 싸우면 9번 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오늘 밤 이 게임은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막아 낼 거다. 우리가 그들을 무너뜨릴 것이야. 왜냐하면 우린 해낼 수 있기 때문이지. 오늘 밤, 우리는 세계 최고의 하키팀이다!” 이런 게 펩 토크다. 스포츠 경기가 과거에 종종 전투로 비교됐다. 격한 대립 직전에 모세혈관까지 흥분시킬 말이 필요하다는 같은 맥락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스포츠 펩 토크가 텍스트가 되는 이유
낮은 자세의 리더는 잘 들어주고, 똑똑한 리더는 명쾌한 솔루션을 내놓는다. 또 다른 리더의 중요한 덕목이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든든한 자신감을 채워주는 말을 진심으로 전하는 것이다. 어려운 시기, 실패했을 때 동기부여를 잘해주는 리더의 존재는 더욱 빛을 발한다. 어떻게 펩 토크를 하면 좋을까. 쉽지도 않고,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 경험과 본인의 생각을 잘 녹이는 게 맞지만 헛헛하다. 기합을 넣어주는 연설이면 될까. “난 널 믿어! 넌 할 수 있어!”라고 하면 열정이 차오르는 게 아니라 속으로 내는 신음소리가 들릴 게다. 그런 시대가 아니다. 정확해야 한다. 리더십에 대한 책도, 교육도 많지만 코칭에서 동기부여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실전정보는 그닥 없다. 펩 토크는 배울 곳이 없다는 말이 성립한다. 사실 우리는 옆팀 리더의 리더십 발휘 방식도 모른다. 좀 더 먼 조직이나, 다른 회사는 더더욱이 정보가 없다. 그래서 신임 팀장은 힘들다. 스포츠에서는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높은 인기와 기사거리를 찾는 기자덕이다. 스포츠팀이라는 조직의 리더인 감독의 리더십과 펩 토크를 포함한 말들은 잘 전해져 왔다. 필자 역시 덕후들에 비하면 약한 스포츠팬이지만 꾸준히 감독들의 조직운영 관련한 인터뷰가 귀에 잡혔다. 오래 기억되어서 이런 결과물을 낳게 되었다. 글을 쓰며 마흔 살 정도 된 기업의 신임팀장을 머리에 그렸다. 도움을 주고 싶었다. 뛰어난 코치/감독이라면 스스로 명 펩 토크를 만들겠지만 우리에겐 마음이 움직일만한 펩 토크의 예시들이, 잘 소화해서 적시에 써먹을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
앞으로 스포츠 역사에 남은 명 펩 토크들을 찾아서 그 맥락과 의미를 파고들어 볼 예정이다. 감독/코치/선수가 경기 전과 작전시간 등 경기장에서 발화되어 뜨겁게 작동한 펩 토크를 씨앗으로 이야기를 펼쳐보겠다. 조금 더 넓혀 이들이 미디어 인터뷰나 자서전을 통해 전해진 일과 삶에 인사이트를 주는 말도 같이 담는다. 파이팅 코멘트는 스펙트럼이 한정적인 점도 있고, 감독코치가 전하는 지혜의 말들의 여러 측면을 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많은 명언들을 보게 될 것이고, 펩 토크의 구성요소도 다음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앞서서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누가 말하냐”이다. 존경하는 사람의 칭찬이 효과가 크듯, 좋은 펩 토크가 약효 있게 퍼지려면 중요한 것이 코치, 리더에 대한 신뢰다. 평소에 마일리지를 쌓아 놓은 감독에 대한 신뢰도가, 팀장의 능력과 인성에 믿음이 없다면 그가 아무리 역사에 남을 펩 토크를 해도 구성원들에게 스며들어가지 않는다. 그 상호 신뢰가 바탕이 되어 적절한 맥락에서, 구체적이면서 필요한 솔루션을 가질 때 펩 토크는 힘이 세다. 명언제조기가 되기에 앞서서 점검하고, 연마해야 할 자질이다. 자, 이제 근육맛이 나는 스포츠 펩 토크에서 삶의, 일의 에너지를 받아보자.
[주]
1.https://www.etymonline.com/word/pep 온라인 사전 etyonline에서 인용.
2.https://www.oed.com/dictionary/pep-talking_n?utm_source=chatgpt.com&tl=true 옥스퍼드 사전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