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확한 위임은 자신감이다

by ㅇㅅㅎ
“항상 위임합니다. 어떤 일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엇이든 그 사람이 담당합니다.”(I always delegate. If someone is very good at something, whatever it is, he will be in charge.)[주1]
- 요한 크루이프 Johan Cruyff 토털 풋볼의 선구자.[주2]



요한 크루이프는 ‘오렌지 군단’과 ‘토털 풋볼’ 두 가지 단어를 링크시키는 이름이다. 오렌지색 유니폼으로 상징되는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토털 풋볼이란 혁신을 일으키며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창시자는 당시 네덜란드 감독 라누스 미헬스이지만 영리하게 토털 풋볼의 필드사령관 역할을 수행해 낸 크루이프가 간판이었다.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했음에도 월드컵 MVP를 받은 이유다. 토털 풋볼은 기존 축구를 어떻게 혁파했을까. 축구는 포메이션 게임이(었)다. 최초는 2-3-5였고, 4-2-4, 4-3-3 등이 대표적 포메이션이다. 안정적 전술이지만 역량 차이가 나는 선수들이 지키는 공간에는 반드시 허점이 있다. 그 빈 틈과 불균질함을 파고든 것이 토털 풋볼이다. 주둔하는 축구에서, 반경을 지키는 축구에서 화전민처럼 먹을거리가 있는 공간으로 침투하는 축구로 만들었다. 고정된 포지션의 유연함 부족과 공격수 1인에 의존하는 단점을 이 전략이 성공적으로 교란했다. 공격수는 공격만, 수비수는 수비만 하는 게 아니라 전원수비, 전원 공격이다. 지역방어처럼 공격/미드필더/수비로 나누는 포드주의(fordism)가 아니었다. 팀의 자원이 필요한 곳으로 스스로 뛰어드는 무정형의 전략이었다. 감독이 된 후 크루이프는 “내 팀에서는 골키퍼가 첫 번째 공격수고, 공격수는 첫 번째 수비수다”라고 말했다. 골키퍼가 공을 최후방 수비수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스위퍼 키퍼(sweeper keeper)의 개념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공격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발재간이 좋았던 당시 네덜란드 골키퍼 얀 융블루트는 공을 잡아낸 뒤 빠르게 패스를 연결시켜 경기전개를 돕는 능력으로 새로운 골키퍼의 모습을 창조했다. 공격수들도 전방에서만 기회를 노리는 역할에서 변모했다. 중원도 오가며 찢을 공간이 보이면 즉각 수비에 가담하여 상대를 압박하는 모습으로 변신했다. 골을 먹으면 수비수가 잘못한 게 아니라 팀 전체의 잘못이고, 골을 넣어도 팀 전체의 기여가 됐다. 축구가 공격수 게임이 아니라 진정한 팀스포츠로 올라간 대목이다. [주 3]



#크루이프의 토털 풋볼: 위임의 축구

가장 큰 전환은 감독이 전술로 선수들을 묶지 않고, 경기장에 11명에게 모두 결정권을 준 것이다. 리누스 미헬스 감독은 그래서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설계자로 불리고 축구사에서 이룬 성적보다 더 크게 평가받는다. 토털 풋볼은 위임의 축구다. 선수가 존(zone) 지키며 주어진 일만 하는 게 아니다. 경기의 흐름을 이해하고, 공의 움직임에 따른 동료와 상대팀에 움직임을 조망하매 자신의 일을 찾아나가는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자세가 필수다. Reactive(반응적인) 태도가 아닌, Proactive(주도적인) 태도가 토털축구의 바탕이다. 토털풋볼의 성공을 위해선 선수들이 이 개념을 이해하고 수행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있게 성장시켜야 한다. 실제 미헬스 감독은 네덜란드 프로팀 아약스에서 6년간 이 개념을 함께한 요한 크루이프가 전방을, 료데크롤(Ruud Krol)이 후방에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 중심을 잡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술연습과 각종 상황에 대한 연습을 해도 경기는 늘 다르게 굴러가니 실패도 많았겠지만 AI가 머신러닝을 하듯 선수들은 적응을 해나가야 한다. 위임의 축구는 믿음의 축구이기도 하다. 서두에 언급한 크루이프의 말처럼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은 다른 것도 잘하리라” 믿으며 경기장에 내 보내는 것이다. 1974년 월드컵 준우승은 토털 풋볼에 필수적인 창의적 플레이에 대한, 상황 대처를 하는 유연함에 대한, 서로를 믿는 팀워크에 대한 신뢰를 할 수 있는 멤버들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빠따’를 맞아가며 운동을 하던 당시의 한국선수들에게 이런 창의적인 플레이는 힘들었을 게다. 토털 풋볼은 축구가 단순한 신체적인 싸움이 아니라, 지능적이고 전략적인 사고의 결과물임을 증명하며, 토털 사커의 이상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토털 풋볼은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만든 티키타카 전술이나 유르겐 클롭 감독의 게겐프레싱(Gegenpressing)으로 이어지며 현대 축구의 유연성과 팀워크를 강조하는 전술로 발전했다.



#조직에서의 위임: 성장과 성과를 위한 첫걸음

‘위임’은 회사의 일에서도 중요하다. 리더 1인에 의존하지 않는 조직적 업무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구성원을 잘 파악해 성장시키고, 새로운 도전을 시켜 역량을 확장시키고, 책임감을 부여하는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이 리더의 위임이고 그래서 중요하다. 위임은 업무를 공정하고 평등하게 배분하는 것이 아니다. 성과의 획득과 함께 구성원들의 성장을 돕는 위임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일을 받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파악을 해야 한다. 과거 실적이나 평가, 평판이 기본 자료겠지만 더 중요한 건, 1 on 1 면담을 통해서 리더가 잡아낸 그 사람의 고유한 특성과 성향, 강점이 우선이다. 감독이 된 크루이프가 “나는 항상 제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사람의 기본자질(basic quality)을 이용한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업무의 위임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까. 기본은 개개의 장점을 발휘할 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리더의 일이다. 여기에 조직원이 새로운 의지를 표현하는 영역에 배치해줄 수 있다면 성과뿐 아니라 신뢰관계를 구축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잘하고 성과를 내는 일이라도, 반복되어서 이미 익숙하고 성장의 성취감이 없는 일은 에너지를 떨어뜨린다. 새로운 좌표에서의 성취감은 일한 사람의 확장을 의미한다. 위임에서 일에 의미부여를 하기 매우 좋은 소재이다. 진심이 중요하다. 리더가 조직과 자신의 성과에만 몰입하지 않고, 조직원의 성장을 진정으로 바랄 때 성장의 위임은 더 힘을 발한다. 팀원들의 잠재력을 키우는 게 리더의 일이다. “H님이 이 과제를 통해서, 혹시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스펙을 하나 쌓는 게 향후 업무와 커리어에 자신이 될 거라고 봅니다. 배움도 있을 것이고요. 이력서에 확실하게 한 줄 더 쓸 수 있는 일이니까요.”라는 말이라면 좋은 모티베이션이 될 것이다.


#좋은 위임에 필요한 요소들

의미부여 다음엔 명확한 역할과 방향성이다. 평가 시기가 되면 조직장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되는 문장 중에 하나가 “업무지시가 명확하지 않다.” “R&R을 정확하게 나눠주지 않는다.”이다. 예를 들어 “고객불만이 많으니, 잘 해결해서 가져와봐요.” “전반적으로 퀄리티를 높이고 에지를 넣어주세요.” 같은 업무지시가 이런 불만의 평가를 부른다. 위임이 명확해야 성과의 기여자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위임이 두리뭉실하면 팀의 위욕을 떨어뜨린다. 더 해지면 좋을 것이 의사결정 포인트와 우선순위이다. 예를 들어 C님, 이번 주 데이터 분석 리포트를 마무리해 주세요. S님, 클라이언트 개선 요청 사항을 정리해서 공유해 주세요. A님, 개발팀과 협력하여 주요 기능 배포 일정을 확정해 주세요”라는 지시는 명확한 듯 하지만 헛헛하다. 집중할 포인트를 찍어주면 머리가 맑아진다. “Y님, 이번 주 데이터 분석 리포트를 작성할 때, 사용자 행동 패턴을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시각화해 주세요. S님, 클라이언트 개선 요청 사항을 정리하되, 니즈를 잘 파악해 우선순위를 정리하는 데 집중해 주세요. A님 개발팀과 협의할 때 필수 기능과 추가 기능을 명확히 구분하여 배포 일정을 확정해 주세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초임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역)에게 선임 정명석(강기영 역) 변호사는 같이 진행하는 첫 재판에 대해 이렇게 위임한다. (검찰이 피의자 할머니 사정이 딱해 살인미수 혐의가 있는데도 구속 영장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하며) “자, 그럼 우영우 변호사가 피고인을 위해서 할 일은 뭐겠어? 집행유예 받으세요. 아무리 재판이 살인죄더라도 집행유예 받기 충분해.” 명확한 위임의 책임은 리더에게만 있지 않다. 받는 이도 궁금증이 사라질 때까지 질문을 해서 서로가 또렷한 상을 가지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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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렷하게 잘 정리된 위임도 끝이 아니다. 리더의 또 다른 일이 시작된다. 일을 해낼 수 있는 대내외 자원을 확보하고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협업하는 타 부서에 진행 업무의 배경과 목적을 잘 설명해서 필요한 지원 리소스를 받아 내는 일은 팀장레벨의 플레이 영역이다. 컨설턴트 김호 작가는 에드가 샤인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다. “조직문화와 마찬가지로 리더십의 핵심에는 도움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흔히 리더는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샤인은 리더란 구성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이 서로 도울 수 있도록 장려하고, 리더 역시 구성원에게 스스럼없이 도움을 요청하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주 4]


새로운 업무에 도전하는 직원이라면 유사 경험이 있는 직원에게 경험 전수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거나 외부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 업무 파악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걷어 내주는 것 등도 필요하다. 또 하나가 주기적인 피드백이다. 잦은 중간보고가 나쁜 경우는 거의 없다. 반대 경우가 화를 불러오고는 한다. 리더는 자신이 위임한 일의 목표를 주기를 정해서 리마인드를 하며 진행상황에서 본인이 서포트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주의해야 점은 리더가 의사로, 조직원이 환자로 포지셔닝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문제가 있더라도 긴급상황이 아니라면 리더는 조직원이 이를 해결해 나갈 방안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열린 대화법을 보여야 한다. 조직원은 풀리지 않은 이슈를 팀과 조직장이 같이 나눠야 할 일로 만드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목표 달성과 함께 성장과 학습의 기회가 된다. 기간에 따라 느슨해지거나 긴장이 떨어지는 상황에 중간 피드백을 긍정적 피드백으로 진행해서 활기를 넣는 것도 리더의 일이다. 성마르게 수시로 개입하는 모양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중간보고와 피드백의 주기를 적절히 정해 놓는 것이 좋다.

리더가 명심해야 할 덕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은 리더의 몫이라는 것이다. 위임을 하더라도, 책임까진 위임되진 않는다. 잘 위임하고, 자원을 잘 확보하고, 명확한 집중포인트를 공유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며 피드백을 제공하는 건 결국 프로젝트가 리더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성과는 나누고, 실패의 책임은 메인으로 짊어져야 한다. 마음이 얇은 리더는 책임질 상황에 대한 불안함으로 일을 꽁꽁 쥐고 나누지 못한다.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부정적 피드백을 하고, 자주 일을 재위임하며 팀 내의 불안정성을 높인다. 일도 사람도 파악하고 장악하지 못하는 리더의 특질이다.


#정확한 위임은 자신감이다

내가 해당 분야를 파악하고 있고, 문제없이 해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뱃심을 보여준다. 문제가 생기면 내가 언제든 그 이슈를 받아서 조직원들과 해결해 낼 수 있다는 증거다. 위임을 두려워하는 행위는 리더로서 자신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리더가 해당분야의 전문성이 부족하더라도 본인보다 확연히 전문성이 뛰어난 좋은 인재를 파악해 배치할 때 좋은 위임이 된다.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이나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이런 위임은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사업의 성숙도와 멤버 구성에 따라 때론 리더의 하드캐리 타임이 있다. 그 안에서도 부분적인 위임은 충분히 가능하다. 반대로 방임하는 리더를 경계해야 한다는 점도 기억하자. 위임인지 방임인지 구분하는 중요한 포인트는 리더의 해당 업무와 과제에 대한 장악력이다. 해당 부분에 역량이 없고, 업무와 멤버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믿는다”를 얘기하는 리더를 볼 수 있다. 이런 리더가 일을 나누고 성과를 종용하면 방임인 것이다. 방임하는 리더는 좋은 멤버를 만나 성과를 내면 복장(福將)으로 칭송받겠지만, 대부분은 오합지졸에 책임을 서로 떠넘기기 바쁜 조직의 모습이 되기 십상이다.

정확한 위임은 그 자체가 리더의 장악력과 자신감의 표현이다. 믿음으로 맡기고, 함께 성장하며, 결국 팀 전체가 승리하는 것이 위임의 궁극적인 목표다. 그것이 토털 풋볼이 가르쳐준 일하는 방식의 진보다. 마지막으로 한국 축구팬이라면 쓴웃음을 지을 위임에 관한 일화가 있다. 국가대표 감독인데 선수들의 클럽경기를 현장에서 보지도 않고, 미국에 체류하는 재택근무 감독으로 공분을 샀던 위르겐 클린스만이다. “(내가 프로선수시절에) 감독들은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빨리 배우기 위해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권한을 스태프들에게 위임해야만 했다. 그건 위계구조를 없앤다는 걸 의미한다.”[주 5] 위르겐 클린스만이다. 감독 커리어를 막 시작한 2006년의 인터뷰다. 이때부터 위임이란 이름으로 방임이 체화된 건 아닌지.



[각주]

1. https://playersbio.com/johan-cruyff-quotes/

2. 1974년 네덜란드 축구국가 대표로 월드컵 준우승을, 아약스와 FC바르셀로나에서는 감독으로 UEFA 우승을 기록했다.

3. 'Why Rinus Michels remains the greatest coach of all time', Prateek Vasish, https://medium.com/totalfootball/why-rinus-michels-remains-the-greatest-coach-of-all-time-917833556cd8

4. ‘리더의 돕는 법’, 에드가 샤인, 9p에서 재인용

5. ‘It's Important to be Hungry for More’, Jörg Kramer, Gerhard Pfeil, https://www.spiegel.de/international/spiegel/spiegel-interview-with-german-coach-klinsmann-it-s-important-to-be-hungry-for-more-a-4151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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