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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현준 Oct 21. 2019

지하철 안


출근길 지하철 안.

어떤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께서 나에게 다가왔다.

주름진 손으로 카톡 창의 한 영상을 가리키며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셨다.

나는 영상의 전달 버튼을 누른 뒤 하단에 친구 목록이 뜨는 걸 확인하고

이제 보내실 분만 선택하시면 된다고 하며 다시 건네주었다.


아저씨는 영상을 전송한듯했지만 나에게 전화길 다시 들이미셨다.

확인차 보여주는 거 같아 제일 위의 대화창을 눌러보았다.

좌측 상단에 '여보'라는 대화 상대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고

아까 급하게 전달 버튼만 누른 영상의 섬네일도 보게 되었는데

보랏빛의 나팔꽃과 초록 잎으로 가득 찬 영상이 아직 읽지 않은 1로 표시돼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지만, 

왠지 수줍어하실 것 같다는 생각에 웃음이 완성되는 것을 막으려 애를 썼다.

나는 '여보'한테 보내신 거 맞으시죠? 라고 할뻔하다가

아차 하고, 다시 머리를 굴려봤지만

결국 아내분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 

'이분'한테 보낸 거 맞으시죠? 라고 재차 확인 후 전화길 건네드렸다.

아저씨는 이내 다른 칸으로 걸음을 옮기셨다.


대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출근길.

그저 집과 회사가 위치한 곳에 내려주는 것만이 최대 목적인 지하철.

이런 평범한 일상에서 오늘은 한 어르신의 마음을 띄우는 것에

작게나마 도와드렸다는 뿌듯함이 헬요일 출근길을 그리 나쁘게 만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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