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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 Nov 03. 2016

경쟁PT에서 졌다.

진 건 진건데, 개운하게 질 수는 없나요. 

광고업계에는 예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경쟁 PT' 혹은 '비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뭐 이렇게 경쟁을 통해서 수주를 하는 경우가 비단 광고업계에만 있겠느냐마는. 

대개의 경우, 광고주가 연간 계약 캠페인을 위해서 경쟁 PT가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업계에 알리고, OT를 연다. 3-4곳 많게는 5-6곳의 대행사가 본 건을 수주하기 위해서 경쟁 PT를 준비한다. 인력이 얼마나 들어가고, 또 이를 준비하기 위해 얼마 만큼의 스터디를 하고, 또 그에 따른 인적, 물리적, 경제적 리소스가 들어가는지는 뭐 경쟁PT에 참여한 각각의 대행사에서 알아서 감당해야 할 일이다. 


일단 경쟁 PT를 준비하게 되면, 해당 건을 준비하는 팀이나 셀은 그야말로 '죽어나는' 거다. 그냥 대충 준비할 수는 없으니까- 정신없이 일 할 수 밖에 없다. 며칠 밤을 새기도 하고, 야근은 기본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한다. (이래서 아마 우리나라에 야근 문화가 마치 '정상'인 것 처럼 뿌리내린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관련한 내용에 대해서는 차후 다시 한번 브런치에서 언급하기로 한다.) 뭐 그렇게 일 한다고 해서 언제나 결과물이 단번에 오케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회사 내부적으로 몇번의 리뷰를 거치고 거쳐, 처음 광고주가 내세운 프로젝트의 목적과,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방식이나 내용이 적절하게 부합할 때까지 '다시 해'다. 


뭐 어쨌든, 그렇게 경쟁PT를 끝내고 나면, 많은 경우 상대의 PT용 제안서를 볼 수 없고, 광고주 측에서도 그것을 A 대행사 몰래 B 대행사에서 보여주지 않는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걸 봤다고, A대행사가 B대행사에게 가서 '아이고~ 제안서를 왜 그렇게 쓰셨어요? 그러니까 광고주가 선택을 안한듯 ㅇㅇ' 이라고 (병신같이)이야기 하지 않는다. 일종의 스포츠 정신 같은 그런 것이 존재 한달까, 상도덕이라고 한달까. 서로 페어플레이를 위해서 노력한다. 그래, 그게 바로 내가 알고, 당신이 아는 '경쟁PT'다. 

그래서 좋았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스포츠처럼, 승부를 보는 것 같아서 좋았다. 

내가 열심히 하면, 나의 실력으로, 나의 논리로, 나의 제작물로 승부를 낼 수 있는 스포츠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던 부분이긴 했다. 

일종의 '관행' 같은 것들. 


최근 또 '경쟁PT'를 했었다. 두 달 가까이 매일 같이 야근을 하고, 정보를 모으고, 스터디를 했다. 

자료를 바탕으로 제안을 썼다. 내부 리뷰를 통해 대차게 까이기도 했다. 

들었던 말 중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도전의식이 생기게 만들었던 말은 이것이다. 

"너 이렇게 감각이 없어서, 마케팅 어떻게 할래?"

(기억하고 싶지 않아...ㅅㅂ...)

그러면서 열심히 했다. 이 제안은 꼭 가져오고 싶었다. (뭐 물론 나는 메인 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경쟁에서 졌다. 

하여튼, 여하튼, 어찌됐든, 진 건 진거다.


그런데 내내 아쉬운 마음이 가시지 않는 것은 한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리팀이, 우리회사가 이 '경쟁PT'를 괜히 참여했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진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내가 좀 열심히 하지 않아서, 며칠 쉬어서, 그래서 결과물이 좋지 않아서, 

그래서, 그런 이유로 졌다면 시원하게 진 것으로 이해했겠지만..

그런 느낌이 좀처럼 들지 않아서다. 


진 건 진건데, 개운하지 않아서이다. 

뭐 그래, 이 모든 것들도 다 내 기준 생각일지도 모르지...



ⓒ 약치기





끝으로 최근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것 같은 애드쿠아 서정교 대표의 글을 남겨본다. 



9월, 10월.

여러 프로젝트들과 큰 비딩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다.

결과를 떠나 내로라하는 회사들과 경쟁할 만큼 시장과 광고주들에게

좋은 평가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쁜 일이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정말이지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준비한 만큼, 결과들도 좋았으면 좋겠다.

일본 광고회사 신입사원의 우울한 소식.

뉴스를 장식하는 여러 이야기들.

비딩이 없어도 프로젝트를 골라서 하는 회사.

비딩이 없어도 시장에서 늘 이슈를 만드는 회사. 

비딩이 없어도 처우나 복지가 최고인 회사가 되고 싶다

그리고, 실무 광고주들의 평가와 상관없이 윗선에서 정해준 곳과 일하게 되었다는 아픈 소식은 더 이상 안 들었으면,

정치나 라인 보다는 실력과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광고하는 분들이 행복한 업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직 3건이 남았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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