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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운 그녀 Sep 05. 2015

벤치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들고 있다.

해가 지면서 제법 찬기운이 몰려와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걸음을 재촉한다.

무채색으로 변해가는 풍경을 그녀는 감당할 길이 없다. 홀로 차가워졌을 방바닥을 생각하자 집에 들어가기가 버겁다.

 그녀는 인적이 드물어진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때때로 혼자 있고 싶으나 혼자임을 느끼고 싶지 않을 때 찾아오곤 했던, 한 켠에 무연히 놓여진, 벤치.

그녀는  한 귀퉁이에 털썩 앉는다. 혼자이지만 마치 누군가 옆에 올 것처럼, 아니, 와주길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한 귀퉁이에.

고개를 조금 들어 짧고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아직 겨울의 초입임에도, 입김이 순간 하얗게 일다 사라진다.

 , 그녀는 자신의 볼에 흐르는 무엇을 느낀다.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이토록 뜨거운 것이구나. 안으로부터 오는 것이 이토록 뜨거워.


그녀는 이내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는다. 마알간 방울을 토독토독 떨어뜨린다.




저기...



갑자기 왼쪽 귀에 낯선 목소리가 들어온다.

그녀는 눈을 떴지만 바로 돌아보지 못한 채, 벤치에 받친 두 손에 힘을 준다. 그녀의 안색을 살피는 눈빛이 그녀 온몸 에 느껴진다.




저기, 혹시 괜찮으시다면...



 조심스레 말을 다. 그제서야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본다.

말끔한 차림의 젊은 남자. 회갈색의 눈동자는 무연한 상처가 깊이 박혀있는 듯 짙게 반짝거린다. 그 눈빛이 낯설지도, 두렵지도 않다.

이 사람,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던가.




괜찮으시다면, 제가 옆에 있어도 될까요?
그게, 당신께 위로가 될 수 있다면요.




그녀는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를 보기만 한다. 머쓱해질 법도 하건만 그 역시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만 있다.

잠시 후 그녀는 대답 대신 다리를 올려 무릎을 말고 이내 얼굴을 파묻는다. 훌쩍이며 들썩이는 그녀의 어깨를 가만 바라보던 그는 벤치에 등을 기댄다.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지도, 등을 다독여 주지도 않는다. 두 손으로 무릎을 쓸어내고는 하늘을 본다. 하늘이 꽤나 까맣다.




얼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잠잠해진 그녀는 숨을 고르며 생각한다.

 다독여 주지 않았, 울지 말라는 말을 , 그의 눈빛을 처음 마주했던 그 순간, 그 짙은 회갈색의 구슬 안에 자신의 모든 슬픔을 내어 맡길 수 있었음을.

, 비어있던 벤치의 한 귀퉁이가 채워진 그 때, 그녀는 그녀의 모든 것을 이해 받았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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