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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Jul 14. 2019

변태의 계절


멀리서 벗이 찾아온대도 이처럼 마음이 바쁘진 않았을 거다. 어젯밤 핸드폰으로 날씨앱을 확인하고는 오늘의 일정을 다시 짰다. 내일의 날씨는 맑대잖아. 이게 며칠 만이냐. 

아침부터 집안 구석구석을 돌며 물기 머금은 것들을 호령해 세탁실로 잡아들였다. 행주랑 수건 삶아 두 통의 빨래를 돌린 다음 철물점표 무지개색 빗자루로 쓱싹쓱싹 물청소를 했다. 

더워서 땀이 삐질삐질 날 수록 맛있게 여물어가는 변태의 계절. 


간밤에 끓여놓은 옥수수차를 좋아하는 컵에 따르고 얼음 두 알 넣어 꼴딱꼴딱 마시는데 쏴아아아- 심상치않은 소리가 들려온다. 소나기다. 오늘만큼은 마른 땅에 변죽만 울리고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다른 마음으로는 그 소리 한 번 시원하다 반기면서 거실 바닥에 누워 눈을 감는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순한 책보다 조금 독한 책이 좋다. 어렵게 읽혀서 땀띠나는 인내심을 요구하거나 지독한 서사로 온 몸 안아픈 데 없게 불편하거나- 

누운 채로 랭보를 읽는다. 척추가 배길 때마다 방향을 바꿔주다보면 소나기 그은 하늘로 여름 철새가 활개치며 지나간다. 빨래가 할랑할랑 제 살 부대껴 춤추고 베란다 타일이 그새 말라 바람난 애인처럼 새초롬한 얼굴을 내밀 즈음 비는 그쳐 무진무진 따가운 여름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겠지. 


이육사의 청포도가 부럽지 않은 칠월, 어느 일요일이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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