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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Aug 04. 2019

어느날

여름, 여름, 여름!

툭하면 계곡으로 뛰쳐나가 물장구 치고, 해태타이거스 어린이야구단에 끼어 땡볕 아래 심장이 터져라 뛰어놀아도 개학날이면 '소나기' 속 윤첨지 손녀처럼 도시기집애로 돌아왔다. 들로 산으로 힘껏 놀러다닌 공도 없이 피부가 너무 허얬다. 노느라 살은 더 내리고 키는 삐죽하니 자라던 어느날 집에 온 큰고모가 애를 좀 놀리고 그래야지 너무 공부만 시키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자, 엄마는 아이고 형님 하고 웃었다. 망아지처럼 뛰어노느라고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시뻘건 태양에너지를 코뿔소처럼 뿜어내던 개구쟁이 시절이 무색하게 중년으로 접어드는 나는 햇빛 알러지때문에 여름나기가 괴롭다. 가려워서 아플 때까지 긁다보면 붉게 부어올라 따끔거리기 일쑤다. 오른손을 핸들에 올려놓는 운전습관 때문인지 손등엔 깨알같은 두드러기 예닐곱개가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긁으면 긁을수록 커지는 것같아서 가려울 적마다 참다가 도저히 못참겠으면 발작적으로(!) 긁곤 했다. 어느날 빨갛게 부어오르도록 긁고 있는 나를 보더니 엄마가 물었다. 너 왜 그러고 있니? 


얼굴에 기미주근깨가 잘 오르는 사람은 보디 피부만큼은 건강하고, 반대로 기미가 잘 생기지 않는 사람은 보디 피부가 약하다는 글이 떠오른다. 건강한 여름피부의 법칙 어쩌고 등등 뷰티담당 시절 내 기사 내용이다. 무슨 근거를 들어 쓴 기억이 난다마는 확률을 바탕으로 한 가설일 뿐 법칙일리 만무하다. 나는 옅게나마 기미도 생겼고 긁느라 붉힌 팔뚝은 전날 내가 어디서 뭘 했는지 눈빛보다 먼저 말해주는 걸. 내 피부에게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한 법칙인 중력의 법칙에 따라 착실하게 바이탈 에너지가 감소하던 어느날 엄마가 얇은 천을 내밀며 말했다. 이거 끼고 운전해라.


직진본능의 막무가내 무법자들을 '김여사'로 부르기로 하자고 초보 여성운전자들을 폄훼하는 사회적 통념이 세워졌을 때 그니들을 까대는 대표적인 소품이 바로 팔토시다. 중년여성들이 흰장갑에 토시를 끼고 어깨부터 손목까지 직각에 가깝게 움켜쥐고 운전하는 모습은 수백수천번 희화된 바 있다. 나도 웃었다. 개콘에서 김미려가 김기사 운전해~ 할 때마다 라임과 톤과 복장의 삼박자에 배꼽을 잡았다. 여성운전자의 팔토시는 심약한 강박증 또는 미숙한 운전실력을 악의없이 조롱할 때 곧잘 쓰였다. 그러나 악의없는 조롱이 있나? 악의 없이 조롱할거면 굳이 왜 조롱해?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유난스럽게. 


집 마당의 나팔꽃과 지리산 계곡의 불어난 빗물과 전주공설운동장의 투아웃만루홈런이 아홉살 인생의 구할을 차지하던 미숙한 삶과 땐땐한 피부의 나는 세월의 둘레를 지나 거짓말과 눈물엔 능란하고 지피지기에 번번이 실패하는 미숙한 삶과 나약한 피부로 살아가고 있다. 바뀐 것은 그렇다, 피부 상태 뿐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내 삶에서 필요한 것은 당장의 토시였다. 거룩한 과업도 개인의 영달도 붉힌 팔이 진정된 다음의 일이다. 왜냐, 누구의 삶도 미숙하니까. 그래서 어쩌면 알게 모르게가 아니라 누구라도 알도록 유난을 떨어야할지도 모르겠다. 미숙하지만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 당면한 삶이 아닐까. 


시원한 모시 팔토시를 팔에 꿰는데, 팔꿈치 위로 쑥 올라온다. 짧은 반팔티셔츠까지 먹어주는 길이감이라니! 핸들 잡을 때 엄지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라고 구멍도 내주셨다. 역시 울엄마다. 재봉틀 앞에서 촘촘이 바늘을 박아넣을 때마다 엄마는 망아지처럼 뛰던 딸의 작고 야무진 발자국을 떠올렸을까. 엄마가 알밤 대신 말로 정수리를 콩 쥐어박는다. 더디 늙어라. 그래야 엄마도 사는 맛이 나지. 


왜 그래 엄마. 아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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