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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Jan 08. 2020

사라지는 숲


#반디의숲

막 태어난 캥거루의 크기는 평균 1센티라지요. 어미 배주머니에 있던 어린 새끼는 점점 뜨거워지는 품 밖으로 나왔다가 유독가스에 숨을 놓치고, 어미는 죽은 새끼를 품고 뛰다가 지열에 영영 정신을 잃었을 거예요. 놀라 허둥대는 발이 아직 땅을 밟기도 전에 불기둥은 들판을 가르며 달려와 코알라의 사지를 허공에 묶어놓았을 거고요. 


호주는 활화산이 없는 유일한 대륙에, 양이 사람보다 세 배 이상 많고, 뉴질랜드에 이어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한 두 번째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제 4개월째 불의 뿔을 하늘에 이고 있고, 오염된 대기로 삶의 위험지수가 크게 증가했고, 공정하지 않은 신의 심판을 받고 있는 나라로 기억되겠지요. 


비극은 각종 숫자로 생생한 기록을 남깁니다. 손실액이 첫머리에 실리죠. 현재까지 추산만 8천억이라지요. 저는 불에 탄 10억 마리 동물과 아름답지 않은 날이 없었을 840만 헥타르(네 서울면적의 100배라면서요)의 숲이 가슴 아픕니다. 비정한 숫자의 플러스 행진은 이어지는 채, 끝을 알 수 없어요. 


숲은 자연적 자리이동 즉 ‘천이’합니다. 표토층부터 생기는 1차 천이는 1000년, 자연재해로 인한 2차 천이는 최소 200년의 시간이 걸려요. 아마도 인간은 유칼립투스 가지에서 나른한 낮잠을 즐기는 코알라를 한동안 볼 수 없겠지요. 유칼립투스 군락이 전소되다시피 했으니 구사일생한 코알라일지라도 먹이활동은 쉽지 않을 거예요. 느리고 쇠약한 코알라들이 터전을 이동해 개체수를 늘릴 수 있으리라는 낙관은 허망합니다.

  

숲이 사라진다는 것은 일종의 경고입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뼈아프게 받아야 할 성적표가 될 거예요. 우리의 생태적 고립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호주의 멋진 호수 아래에 누가 사는지, 호주 토종인 앵무새가 새로 익힌 말이 뭔지 알려줄 신실하고 명랑한 전달자가 없어졌다는 뜻이니까요.   


자연은 우리에게 단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요. 바로 공포입니다. 대지가 폐허에서 생명의 터전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우리가 누려온 풍요에 겸허할 것, 지구 반대편에 비극이 끝나기를 기도할 것. 


#prayforaustralia #사라지는숲 #반딧불이안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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