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이 그랬지. '흔하기는 명태 맛은 청어'. 들어올리는 그물마다 명태가 그득했던 모양이라, 버려지기도 숱했다는군. 펄떡이는 명태들은 바다에만 아니라 부둣가에도 흔했다대. 바다에선 살겠지만 뭍에선 도리없지. 어부들은 고마운 줄 몰랐네.
바람이 높이 불수록 바다는 움직임이 거의 없어서 마치 사나운 바람에 단단히 포박당한 듯 보이지만 실제론 미세한 파동으로 수면이 우렁우렁해. 명태는 그 아래 살지. 벼린 칼같은 바람이 물길을 바꿔놓아도 길을 잃는 법이 없다네. 먹청색 바다 위로 제 눈알만한 눈송이가 쏟아지는 광경을 질리도록 보았을 한겨울의 흔하디 흔한 물고기.
명태 씨가 마른 지는 근 이십년이 넘을 걸. 높아진 수온을 못배기고 떠난 명태를 잡겠다고 치어를 푸네 수온을 낮추네 난리를 부린 게 십년 쯤 됐고. 그러니까 지금 잡혀올라오는 명태는 강릉 앞바다에서 놀던 1세대가 아닌 셈이야. 당연히 쫄깃하고 야들야들한 맛은 오래 전에 없어졌어. 여간 슬픈 일이 아니지.
나는 오랜 명태빠라네. 그 중에서도 명탯국에 환장해왔지. 명탯국이 밥상에 올라오면 바짝 들어앉아 국물부터 마셨어. 뱃구레가 작아 키만 삐죽한 딸래미가 국대접을 달게 들고 마시니 엄마는 얼마나 좋았겠나. 작은 아가미까지 발골수준으로 뼈를 쏙쏙 바르면서 해치워온 명태만 헤아릴 수 없어. 말랑말랑 야들야들한 명태살, 곤이와 이리가 치즈처럼 녹은 국물로 가열차게 피와 살을 만들어 오늘날 어언 반백살이 되었지.
살뜨물로 씻은 명태를 바글바글 끓이다가 두부와 얇게 썬 무, 어슷썬 대파와 마늘을 넣고 고춧가루를 솔솔 뿌리면 되는 간단한 음식인데 맛을 내기가 쉽지 않아. 명색이 전라고을 전주의 딸인데 내게도 뒤늦게 손맛이란 것이 터질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면서 덤벼봤지만 결과는, 결과는, 결과였네.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해도 먹을 줄만 알았지 누굴 조석으로 해먹여본 적 없는 자로써, 이제와 흉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잘 만들어주는 사람, 한 마디로 내 입에 맞는 손을 가진 사람을 가까이 두고 갖은 아첨과 요설로 끼니를 해결하는 게 순리임을 이제는 아는 나이가 되었네. 남녀불문 독거 반백인이 잘난 척 하면 안 될 세가지는 첫째 연애경험, 둘째 머리숱, 세째 요리실력이지. 겸손할 수록 개이득이거든.
출발하기 전에 '엄마 명탯국 먹고싶어' 하고 내려가보면 함바집 수준의 대용량 명탯국이 끓고 있을 것이기에 어떤 메뉴도 말하지 않은지 꽤 됐지만 오늘은 젊었던 나의 아버지를 흉내내며 후루룩 마셨던 눅진한 명탯국이 먹고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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