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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Apr 11. 2019

철쭉 앞에서 머뭇거릴 적에




예닐곱쯤 됐을까. 그보다 적거나 많을까.

서대문 역사박물관에 산책겸 들렀다가, 건물 마당에서 여자아이 셋을 보았다. 아이들은 바닥에 깔린 블록을 놀이판 삼아 룰을 정하는 중이었다.


내일모레 사이 꽃망울을 터뜨릴 이팝나무를 바라보면서도 신경은 세 아이들에게로 열렸다. 핸드폰이나 게임기 없는 맨 손의 아이들이 신기했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에서 놀이를 궁리하는 게 대견했고, 아이들이 지금 막 하려는 놀이가 어릴 적 내가 동네 친구들이랑 하던 놀이인 게 반가워서였다.


특히 세번째 이유때문에 나는 가슴마저 뛰었다. 대문을 나서면 천지가 놀이터에, 보이는 얼굴 모두 어제 놀았던 개구장이 친구들이었다. 형제들의 친구들도 금세 친구가 됐으니, 한 울타리에서 함께 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거다. 셋만 모이면 우리는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금을 그어 커다란 도형을 만들고, 맨 끝에 막대나 돌을 세웠다. 한 발로 도형을 건너 정수리에 얹은 돌로 막대를 쓰러트리면 되는 게임. 우리 동네에선 막대맞추기라고 불렀다.

하루의 소소한 그늘을 지우고 말썽부리다 혼쭐난 기억을 날리고 폴짝 폴짝 뛰는 동안 봄볕 아래 키가 쑥쑥 자랐다. 힘껏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힘껏 노는 어른들을 바라보는 것보다 백만배쯤 아름답고 무구하다.


이날의 아이들에게서 내 어린 날의 순결한 쾌감과 조우했다. 세 명 중 리더로 보이는 아이가 룰을 정한다. 살짝 찡그린 이마, 단정하게 묶인 머리카락, 하얀 운동화가 예쁘다. 팔을 흔들 때마다 돌돌 말아올린 소매 아래로 실 팔찌 한 줄이 짤랑 소리를 낸다. 가장 작은 아이가 역사박물관과 경희궁 사잇길의 정원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와 자기들이 정한 네번째 보도블록에 던졌다. 리더가 깨금발로 서서 콩콩 뛰며 말한다.

저기까지 이렇게 한 발로 가서 돌아오는 걸로 하자.

중간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다 넘어지면 어떡해.

리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쉬워한다. 지금 막 새로 놀이를 발명한 참인데! 나뭇가지 하나를 던져놓는 순간 꼬인 거다. 세 명의 소녀는 긴급 회의를 시작했다. 아까부터 끼어들고 싶은 마음을 눌러온 나는 선하디 선한 호모 사피엔스의 정령이라도 된 것처럼, 금도끼와 은도끼를 모두 풀어놓는 대인배 산신령처럼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지말고 원점에서 돌을 던져서 나뭇가지를 맞추는 건 어때? 훨씬 간단하고 재밌어!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 건 소녀들이 아니라 나였다. 실망감과 무안함이 섞인 채 아이들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갔다. 아이들은 나뭇가지를 둘러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듣보잡 아줌마의 등장과 함께 자신들이 여태 짜놓은 놀이를 일거에 부정당한 것이다. 나뭇가지가 쓸모없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걸 실감했는지 작은 아이의 표정이 특히 좋지 않았다. 이게 아닌데!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곧바로 미안해졌다. 뭐라도 말을 하려고 한 걸음 다가서는 찰나 나뭇가지를 주우며 리더가 말했다.

저쪽 가서 놀자.


그제야 깨달았다. 아이들에게는 뭘 하고 놀까? 를 궁리하는 것부터 놀이의 시작이라는 것을. 나뭇가지를 주워와 블록에 넣어보고 뺐다가 돌멩이를 가져오는 궁리를 해보는 것도 아이들만의 놀이라는 것을. 먼 기억으로부터 어린 시절의 놀이에 완전한 실패는 없었던 것이 되살아났다. 완성되지 않은 놀이일 뿐이다. 굳이 나서서 완전한 실패작으로 만들었다. 아까부터 노골적으로 소녀 셋을 지켜보던 아줌마 아니, 내가.

  

그렇다고 그렇게 쌩 하고 갈 건 뭐냐 소녀들아 하고 탓해봤지만 입맛이 썼다.

힘껏 놀고 있는 아름답고 무구한 소녀들을 훼방놓은 건 나였으면서 뭘.


이핍나무 옆으로 철쭉 꽃망울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철쭉을 한자로 척촉(躑躅)이라고 쓰는데 머뭇거릴 척 머뭇거릴 촉이다. 두번이나 머뭇거림을 강조한 이유는 독성 때문이다. 산에 풀어놓은 염소가 이 꽃을 먹고 설사를 하여 더이상 먹지 않고 꽃 앞에서 머뭇거린 것에서 유래했다.  

하지 말까 머뭇거려질 때는 한 번 더 머뭇거릴 일이다. 그러면 답은 나온다. 나서지 말고 그대로 둬야 한다. 특히 아이 앞에서 어른인 것을 내세우면 부끄러운 일만 생긴다. 나뭇가지를 들고 총총 사라지던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머쓱했던 나는 이제야 꽃 덥석 물어 설사한 염소의 죄를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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