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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Apr 13. 2019

꽃의 역사


보기에 그저 꽃 같지만 단지 꽃만은 아니다. 

한 송이 꽃에는 한 곡의 노래, 한 권의 책, 한 편의 드라마가 있다. 

어떤 마음 또는 고백 또는 눈물이 스며있다. 

한 번의 꽃피움, 그 찰나를 위해 뿌리부터 맨 마지막 이파리가 애쓰는 벼랑 끝의 절정이다.


나무나 풀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꽃이다. 아름다움과 향기에 물론 취한다. 동물은 대개 그러하다. 

광물은 자라고 식물은 숨쉬고 동물은 느낀다고 했던가. 

동물인 우리는 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한다. 고상을 떨자면 성찰한다. 

너는 어디서 왔니 너는 왜 붉니 너는 어쩌다가 땅으로 돌아가니 같은 추상적인 질문들. 

여기까지라면 절반을 본 것이다. 

자연은 성찰하는 게 아니라 관찰하는 거더라. 


개나리는 본래의 네 장에서 왜 한 장의 통꽃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진달래는 왜 점선을 따라 고개를 숙이는지 

민들레와 제비꽃은 왜 땅 가까이 피는지 

목련은 왜 자목련 백목련으로 분화하는지 

산수유와 생강나무, 벚꽃과 매화는 어떻게 다른지 

피나물과 애기똥풀에선 왜 붉고 노란 즙이 나오는지 


다 살자고 그러는 것이다.


벌들이 길 잃지 말고 찾아오라고 

봄 한 철 만들어둔 암술을 쭉쭉 빨아 수술에 앉아 달라고 

내 자손을 널리 퍼뜨려 우리를 길이길이 생존케해달라고 


타고나길 작게 생겼으니 다른 꽃들 피기 전에 채비하려고 

눈 녹기 무섭게 꽃대 올려서 햇빛 받으려고 

부지런한 진드기 흰개미 꿀벌 부지런한 애들에게 주려고 

내 꿀 가져가서 내 작은 씨 퍼트리게 하려고 


내가 원하는 매개체 말고 얼씬 말라고 

무턱대고 날 탐했다간 붓고 피날 거라고 

용감한 애들 드루와 드루와 드루오라고 

먹고 마른 땅에 가서 내 즙 토해놓으라고 

그 즙이 땅에 스며 길이길이 생존케해달라고 


다 살자고 그러는 것이다. 


봄꽃을 해부 중이다. 

개나리, 목련, 자목련, 산수유, 앵도나무, 서양민들레, 호제비꽃, 종지나물, 산당화, 무스카리, 왕벚꽃... 


꽃잎과 꽃받침 뜯고 암술과 수술을 분리한다.

핀셋으로 꽃잎 한 장 뜯어낼 때마다 입 다문 새로 악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4억년 전부터 이 땅에 뿌리내려온 식물의 장엄하고 눈물겨운 역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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