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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Mar 28. 2019

나무의 우주적 순환, 그루터기

홍릉수목원의 그루터기

"집근처 산책로는 물론이거니와 숲이란 숲은 모두 제 놀이터인양 하는 짓이 경망스럽다. 수피에 바짝 얼굴을 대고는 별로 비슷하지도 않은 이름들을 읊고, 봄물이 겨우 돌기 시작한 가지를 우악스럽게 끌어내리는가 하면 막 세상에 나온 이파리를 날카로운 손톱으로 문질문질 비벼댄다. 한숨이 절로난다. 분별 없는 우매함이야 안쓰럽다 치고 이토록 예의없기가 어디 쉬울까." 


나무는 내가 저를 탐욕스럽게 바라보고 만질 때마다 이렇게 엄한 얼굴로 나를 내려보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움찔한다. 많게는 수천년을 사는 그니 입장에선 기껏 백년도 못사는 한평생을 빗대어 거룩한 척 호들갑떠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없겠나. 숲에서 놀겠다고 시작한 공부가 재미와 함께 경외감으로 변하고 있다. 작은 뿌리털 하나를 본 것 같은데 어마어마한 둘레의 나무 하나를 보려면 죽기 전엔 글렀다. 엄두를 내서도 안될 일임을 짐작하고 있다. 

나무는 그냥, 우주다. 


오늘은 살아있는 나무에만 호들갑 떨지 않고, 죽은 나무에도 분별없이 알은 체를 하고 왔다. 죽었으나 죽은 채로 살아있는 나무, 우리 숲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그루터기다. 줄기가 댕강 잘려나가 나무의 생리적 기능이 끝났으니 죽은 게 맞고, 어떤 작용도 하지 않은 채 땅에 박혀 숲을 이루고 있으니 산 것도 맞다. 죽은 채 살아있는 존재가 나무 말고 또 있는지 아직 모르겠다. 집 뒷산 산책로 중간쯤 너럭바위 아래 삐딱한 모습으로 잘려나간 그루터기 하나를 오늘에야 보았다.   


"흰개미들의 전쟁이 어떻게 끝나건 나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기로 했다. 더 아늑하고 단단한 옹이를 차지하겠다는 저들의 욕망은 알겠는데 옹이를 빼앗기면 애벌레들은 움틀 새도 없이 사슴벌레의 먹이가 될 것이다. 다리 하나를 잃은 박새가 먹이를 물고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일찍 둥지에 들 모양이다. 

나이테를 만들지 않으니 시간이 어떻게 오고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대가 완벽한 삶을 알고 싶거든 죽은 나무의 밑둥에서 새로운 삶을 일궈가는 이 위대한 존재들에게 물어보라." 


흰개미때문이 아니라 애벌레때문이 아니라, 사슴벌레나 박새 때문은 더더욱 아니라, 이 아무렇게나 툭 잘려나간 눈물겨운 우주에 감히 궁댕이를 대고 앉을 수가 없어서 서성이다가 돌아섰다. 물론, 흰개미나 박새 뿐 아니라 나도 그루터기에 시간의 방점을 찍을 수 있다. 나무는 살았거나 죽었거나 분별없고 예의없는 싸가지마저 우주적으로 품고 초월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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