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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May 11. 2019

수전 손택의 말

수전 손택이 작가이자 친구인 조너선 콧과 대담집을 내기로 했을 때가 마흔 중반이었다. 물론 그 뒤로도 혁명과도 같은 저작들을 내놨고 육체적 고통 속에 일흔 한 살로 영면에 들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인이었던 손택은 암투병을 하면서도 의식의 어느 한 군데 녹슬게 두지 않았다. 그의 철학적 깊이와 삶의 태도는 유기적으로 완벽하게 맞물렸고 아름다웠으며 치열했다.


특히 (번역본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구사하는 단어가 좋았다. 사람이 쓰는 단어는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다. 단어를 조합하는 방식에 따라 그가 사회적으로 철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말투나 몇 가지 단어는 흉내낼 수 있어도 언어체계까지 끌어올 순 없는 일이다. 


창작이나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인생의 박탈이나 상실이 일어났을 때 최대한 부풀려서 우울하고 병든 결과물로 주변을 환기한다. 그중 소수의 사람만이 풍부하고 강도 높게 스펙트럼을 확장할 수 있다. 손택은 후자다. 여러 차례 암 투병을 했고 끝내 골수성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했는데, 젊은 나이에 첫 번째 암이 발병했을 당시 이미 스스로를 단련시킨다. 절대 질병에 무장하지 않고 세상에 분노하지 않기로.


책에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바로 지금 겪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병원에 입원해서 죽게 될 거라고 아직 벌어지지않은 일을 생각해보라. 끔찍한 고통 속에 살게 될 것”  “내가 원하는 건 내 삶 속에 온전히 현존하는 것이다. 지금 있는 곳에, 자기 삶 속에 자기 자신과 동시에 존재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세계에 온전한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속한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바로 작가의 일이라는 것이다.

손택보다 조금 늦게 세상에 나와 고유한 문법으로 독자를 매혹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내 개인적 탐색이 보편적인 혹은 동시대적인 탐색과 원만하게 결합하는 것”이라고 작가관을 밝힌 바 있다. 위대한 작가들에게 동시대성은 필수적이다. 


손택에겐 몸이 아픈 것보다 당장 써야할 원고를 세심하고 매력적인 단어로 쓰는 일이 더 중요했다. '처음엔 화도 났지만 신이나 생물학에 대고 분노만 하고 있을 순 없으니' 내가 이룩할 수 있는 또는 그럴 가치가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단순한 논리였다.


‘손택의 말’을 꺼내 읽고 있다면 그 날의 심상이 별로라는 뜻이다. 이 책은 내 언어의 세계가 부끄럽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 주사 맞듯 집어들게 되는 몇 권 중 하나다.


손택 가라사대 내가 속한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고 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일에 몰두할 것.

말하자면 닥치고 글을 쓰라는 것.


쓰되,

쓸 거면,

그 글은 섬세하고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것.

.

.

.

털썩! 더 우울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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