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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May 15. 2019

뻐꾸기의 야간작업

밤새 안녕? 숲은 모든 걸 알고 있지.

새는 밤새 울었다. 의미를 읽어낼 수 없는 규칙적인 음절이 검은 숲을 에워쌌다. 새 소리에 잠을 방해받는 밤은 처음이라 뒤척이다 일어나 문단속을 했다. 이중창을 걸어 잠그니 음량은 줄었지만, 음절은 여전했다. 홀딱벗고, 홀딱벗고.


녀석은 여름철새인 검은등뻐꾸기다. 조류학자들이 수차례 강조하기를 카카코코 소리로 운다는데도 짓궂은 사람들은 홀딱벗고 소리로 운다고 시치미를 뗀다. 과연 들어보면 홀딱벗고 운다. 뻐꾸기랑 비슷한 생김에, 등에 굵고 검은 줄이 있다. 부리가 휘어져있고 꼬리가 길다. 작은 동물을 부리로 찢어먹기 좋아하는 육식파의 특성이다.


피는 속일 수가 없지. 녀석도 다른 뻐꾸기처럼 탁란(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행위)한다. 둥지 주인이 알을 품다가 잠깐 자리를 뜬 사이에 제 알을 까놓고 사라진다. 이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어미새는 둥지의 알을 차례로 품어주며 부화를 재촉한다.

뻐꾸기의 활약이랄까 포악이랄까 하여간 놀라운 본성은 태어나자마자 드러난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 뻐꾸기는 부화중이거나 부화 직전의 알들을 집요하게 밀어 둥지 밖으로 떨어트린다. 흡사 진격의 뻐꾸기랄까. 아직 눈도 못 뜬 새끼 뻐꾸기가 날갯죽지로 알들을 밀어내는 장면은 그저 공포다. 바닥에 떨어진 알과 새끼가 생존할 확률은 거의 없다. 짹 소리 한 번 못 내보고 생사가 갈린 어린 존재들은 미처 온기가 식기도 전에 전날 좋은 꿈을 꾼 누룩뱀이나 삵의 차지가 된다.    


뻐꾸기는 함께 온기를 나눴던 포란 형제를 제거해 움을 터야하는 비정한 본능을 지녔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이 형제는 아니며, 저를 품어줬대서 어미도 아니지만 새들은 공간개념이 강하기 때문에 자기 둥지에 들어온 알은 새끼로, 한 둥지에서 부화한 존재를 형제로 인식한다. 그러나 살면서 한 번도 둥지를 만들어본 적 없는 뻐꾸기는 이렇듯 강력한 천륜의 자기장 밖에 머문다. 생명있는 것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종족번식의 본능만이 뻐꾸기의 생태를 결정한다.


잠든 고라니 부부를 깨우고 도토리 옮기던 다람쥐를 놀래키면서 새는 오랫동안 카카코코 울었다. 밤은 깊어가는데 사위는 조용해서 소리는 더욱 선명해져만 갔다. 급기야 녀석이 내 집 창가에 날아와  알 좀 놓게 문 열라고 부리로 톡톡 두드릴 것만 같아서, 문단속에 신경쓰이던 오월밤의 어처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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